'스승의 권위' 빈자리 채운 감정노동…보호책 급선무[무너진 교권③]
권위는 없는데 교육자 역할 요구…빠른 '번아웃'
"과거 교권침해 경고했지만 사회적 반응은 냉담"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교육계 밖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폭력에 고통 받는 교사들을 마주해 왔던 변호사와 정신건강 전문의들은 스승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를 감정노동이 채웠다고 진단한다.
교사들은 문제 행동 학생과 악성 민원을 요구하는 학부모를 접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과 교육자, 스승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고뇌하며 과도한 감정의 소진을 겪는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조근호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의사회) 정책위원장은 25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교사들이 최근 부쩍 늘었고 어려움을 듣다 보면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진 특수성이 보인다"고 운을 뗐다.
앞서 21일 의사회는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저연차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안에 대해 성명을 내 "학교라는 특수한 조직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면서 행정 업무까지 도맡은 교사들의 정신 건강 관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특수한 조직, 상황의 의미를 묻자, 조 정책위원장은 "학교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교사는) 항상 모범이 돼야 하고 싫은 소리를 못하며 밖에서 보기에도 완벽하고 큰 문제가 없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전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문제 삼아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혐의 쟁송에 나서는 일부 학부모나 법·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학생의 사례는 교사의 권위를 '스승의 가르침'이라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권리 찾기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풍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스스로를 옥죄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리며 어려움에 대해서 털어놓는 것조차 소위 '철밥통', '누가 교사하라 했냐'는 식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임이랑 법률사무소 률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교사들이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공유해 왔는데 밖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징징거린다'는 식으로 취급했다"며 "몇 년 전부터 교권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럼 선생님 하지 마'라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교권침해가 문제라는 지적에 제기되는 세간의 냉소에 대해 임 변호사는 "(교권침해는)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지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인데 이건 우리 사회 전체적인 문제지 결코 한 직업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백종우 경희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따른 반작용으로 권위에 대한 반발이 커졌는데 (그로인해) 교권을 비롯한 권한의 상실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라며 "조치가 없이 설득으로만 대응해야 할 때 그 부담감이 교사에게 지나친 감정노동, 소진을 초래하는 현상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교사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간 무감각했던 만큼 부담을 덜어주고 약자의 권리와 교권을 균형 있게 보장하는 고민이 필요할 때라는 것이다.
조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학교라는 조직의 위상을 가지며 교육자로서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가치가 의미 없다고 단정하기는 위험하다"며 "그렇다고 그런 부담감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육 현장이 조금 더 어려움에 솔직해지고, 세상에서 교사들의 어려움을 받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제언했다.
그는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는 상황, 한쪽으로 부담이 몰리는 상황이 아니라 상호간에 균형 잡히게 방법을 찾아가는 중장기적 고민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논의 테이블이 필요하고 그런 게 만들어지면 저희 의사회에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다수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일부 악용 사례가 있다며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법률고문)는 "옛날에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참았다면 지금은 참지 않고, 하물며 정치인조차 문제가 생기면 (상대를) 고소하고 법적 대응을 하듯 (권리 찾기가) 사회적 추세"라며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도 똑같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고통 받는 것은 한두 명의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학습권은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인데 문제 학생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임 변호사도 "학생인권조례는 상징적이지 법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며 "학생은 당연히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보호 받는다는 헌법상 기본권을 명문화한 것인데 문제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생활지도를 받으면 안 된다는 사람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지 학생인권조례가 잘못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권위를 잃은 교권의 균형감을 찾아주는 데에는 학부모와 학생의 교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만큼 지난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교사 출신 변호사들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 나가자고 제언한다.
교사의 과도한 감정노동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대책부터 해 나가자는 설명이다. 예컨대 문제 행동을 저지르는 학생들을 학교의 판단으로 분리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공공기관처럼 창구를 마련해 교사를 악성 민원에서 보호하자는 제안이다.
전 변호사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흔히 경계성이라 표현한다"며 "가정에서는 나 몰라라 하거나 '우리 자녀는 멀쩡한데 왜 자꾸 색안경을 끼고 보느냐'는 학부모들이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시도교육청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학교 의뢰를 받아 학생을 진단, 심의한 뒤 '교육보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문제 학생을 학교에서 분리하는 절차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며 "이런 것부터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일단 시급한 것은 민원 전화부터 (교사들로부터) 분리를 해야 하는 게 가장 좋다. 개인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받지 않는 것만 만들어도 훨씬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아무리 사소한 민원이라도 퇴근 이후나 주말까지 계속 전화가 오면 힘들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는 일부라 해도 사소한 일로 전화를 하는 학부모는 정말 많다"고 전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정당한 생활지도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관할 교육청 의견을 듣게 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도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는 평가다.
전 변호사는 "아동학대로 교사가 고소를 당하면 무조건 불리한 상황이다. 예컨대 교육청 지침 등으로 병가나 휴직을 내게 한다"며 "'피소된 교사가 아이를 가르친다'고 하면 피해자 보호를 안 한다고 보거나 학부모가 '저 교사 때문에 자녀를 학교에 못 보낸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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