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스무 살 병사들 얼마나 더 희생해야 ‘대한강군’될까
혁신없이 ‘악으로 깡으로’ 외치는 지도자들의 구닥다리 리더십 탓
엘리트 키워내는 이스라엘처럼 젊은이 선망하는 군대 만들어야
2년 전 여름,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강원도 최북단 비무장지대(DMZ)에서 스무 살 청년이 스러졌다. 사인(死因)은 열사병이었지만 순직한 병사의 어머니는 “국가의 무관심이 내 아들을 죽였다”고 절규했다.
그는 코로나 1차 접종 후 일주일도 안 돼 훈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수색작전에 투입됐다. 밧줄을 잡고 가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른 산길로, 숙련된 대원들도 힘겨워하는 작전지였다. 일반 의무병이라 방탄조끼에 방탄모를 쓴 채 등에는 군장을, 가슴엔 아이스패드가 든 박스를 맸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이었다. 결국 의식을 잃은 병사는 대원들 등에 업혀 산길을 내려오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왜 헬기를 띄우지 않았느냐는 유족들 항의에 군은 작전지역이 험해 불가능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9·19 군사합의로 인한 ‘군사분계선 비행 금지’ 때문이라는 후문이 돌았다. 일병의 어머니는 “엄마가 장관이고 아빠가 국회의원이었어도 그랬을까. 억울한 죽음은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이 아니었다. 입대 4개월 차인 스무 살 일병이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주변 지형지물 파악이라는 기본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채 병사들 머릿수로 밀어붙인 군의 무모한 작전 탓이었다. 지휘부는 장갑차도 유속을 못 이겨 철수한 하천에 병사들을 맨몸으로 집어넣었다. 안전로프도 없었다. 구명조끼 없는 빨간 셔츠엔 ‘해병대’라는 세 글자만 선명했다.
일련의 군대 사망 사건이 치명적인 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대를 이어 전해주는 군대 무용담은 험악하기 짝이 없다. 군대란 훈련받다가 죽고, 상관에게 맞아서 죽고, 총기 오발로 죽기도 하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흑역사가 세뇌된다.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닌데, 다치지 않고 돌아오면 최고란다. 보이스카우트로 조롱받는 요즘 군대에서조차 매년 100명이 넘는 군인이 목숨을 잃는다. 그중 절반은 극단적 선택이다. 군대 부조리를 폭로한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흥행하는 이유다.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이란 책이 있다. 800만 인구에 현역병은 18만 명뿐인 이스라엘 군대가 오일머니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주변 아랍국을 압도하는 군사강국으로 우뚝 선 비결이 감동적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8세 이상 남녀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만 지우지 않는다. 군대를 최고 수준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로 만들어놨다. 사이버첩보가 주임무인 8200부대는 명문대보다 들어가기가 더 힘들단다. 업무 경험이 제대 후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군대 구성원도 다양하다. 베두인족으로 구성된 특수정찰부대는 사막 순찰과 땅굴 탐지를 도맡고, 천재성 자폐를 지닌 병사들은 위성사진 판독과 정보 분석을 담당한다. 사회에 나오면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부대에서 복무했는지 물을 만큼 국민이 군대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도발, 열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에서 한국은 이스라엘과 흡사하다. 국방비만 57조로 세계 10위권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고 싶은 군대’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부심이 되는 군대’ ‘인생 낭비가 아니라 스펙이 되는 군대’를 만들지 못할까.
나는 그 결정적 차이가 국방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면 병사들 전투력만큼이나 애국심과 자존감을 높일까 머리를 맞댈 때 우리는 ‘악으로 깡으로’를 외친다. 밀리터리 덕후들조차 ‘까라면 깐다’는 상명하복만 있지 창의와 지략은 찾아볼 수 없는 주먹구구식 병영체계에 실망하고 전역한다. 사고가 나면 훈련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덮고, 총도 쏠 줄 모르는 군대라 비판하면 우리의 주적(主敵)은 극성맞은 부모들이라며 불평한다.
꽃다운 군인들의 희생이 얼마나 더 계속돼야 대한강군이 될까. 전략핵잠수함과 수백대의 스텔스기를 보유하면 강군인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라는 러시아는 왜 방탄복도 제대로 갖춰입지 않은 우크라이나 병사들 앞에서 무너지는가.
“원래 그런 군대”란 없다. 혁신을 거듭해야 강군이 된다. 상부 권력보다 일개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리더가 강군을 만든다.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어디 있느냐”는 채 일병 아버지의 절규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대한민국 군대의 매뉴얼은 언제까지 병사들의 피로 쓰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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