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독일어 안 통하는 가게 급증… 주민들 속 터진다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2023. 7.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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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리의 구텐 탁 독일]
난민 유입으로 외국인 종업원 늘어
지난 21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의 카페 '더반'에서 주문을 하려는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곳은 '영어를 유창하게 할 것'을 채용조건으로 내걸었다./최아리 기자

지난 21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가 포츠다머 광장의 카페 ‘더반’. 자녀를 데리고 들어선 한 부부가 카운터에서 영어로 주문을 하더니, 자리에 앉아서는 독일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카페 메뉴판에는 모든 메뉴가 영어로 쓰여 있다. 업체가 홈페이지에 올린 채용 조건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할 것. 독일어를 하면 플러스가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영어가 가능한 직원을 우선 채용하는 것이다. 실제 이 업체의 인터넷 후기에는 “직원과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는 불만 글도 올라왔다.

카페 '더반'의 메뉴판. 모든 메뉴가 영어로만 적혀 있다./최아리 기자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최근 베를린에 외국인 유입이 많아지면서 “죄송합니다만, 독일어는 안 됩니다(No German please)”라고 응대하는 가게가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난민 유입 등으로 외국인 거주자가 더 늘어난 데다 일손 부족도 겹치면서 독일어 구사가 더 이상 채용의 조건으로 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를린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거주 등록 인구 385만명 중 94만명(24%)이 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난민이 대거 유입되며 외국인 인구가 더 늘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늘어난 베를린 인구 7만5000명 중 절반 넘는 4만2000명이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베를린의 유명 관광 거리 크로이츠베르크의 한 식당 주인은 “손님 대부분이 관광객이라 영어만 할 줄 알아도 일할 수 있다”며 “다른 지역들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에 거주한 지 3년째인 독일인 사브리나(37)는 “심지어 독일인 종업원에게 독일어로 물었는데 영어로 답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식당에서 독일어를 썼더니 직원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렸다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베를린의 아시안 음식점 ‘한웨스트’의 후기 중에는 “영어를 못 하면 더 이상 베를린에서 외식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베를린은 영어의 폭넓은 사용과 함께 젊은 국제 도시로서 명성을 키워왔다. 하지만 독일어가 홀대받는 상황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매체 자이트 온라인판은 “(영어만 쓰는 가게가 생겨나는 것은) 자신의 문화적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프랑스 파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독 베를린에서는 이를 국제적인 역량으로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2017년 당시 재무부 차관이던 옌스 슈판(기독민주당·CDU)이 언론 인터뷰에서 “베를린의 일부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영어만 사용 가능한 것이 점점 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2018년 베를린 경찰학교는 “경찰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일어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독일어 수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독일어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영어를 권장할수록 이주민들은 독일어를 배우지 않으려 할 것” “영어를 할 줄 아는 독일인과 못 하는 독일인이 분열하게 될 것” “왜 무조건 외국인들을 배려해야 하나” 등 비판 글이 다수다.

반면 이런 상황에 적응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자유민주당(FDP)은 보육교사가 독일어를 전혀 못 하더라도 일부 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어린이집 교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민 가정 자녀들이 다수인 유치원의 경우 아이들의 모국어를 구사하는 보육교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폴란드와 접경 등 이주민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이런 법 개정 요구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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