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917년 7월 25일 마타 하리 사형 선고

김지원 기자 2023. 7.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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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7월 25일, 프랑스 군사법원이 41세 여성 스파이 마타 하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중 첩자로 활동해 온 그가 연합군의 고위 장교들을 유혹해 독일군에 기밀을 전달했으며, 이는 연합군 5만명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고급 정보였다는 프랑스 당국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마타 하리는 10월 총살형에 처해졌다.

말레이어로 ‘여명의 눈동자’를 뜻하는 ‘마타 하리’는 예명이다. 1876년 네덜란드에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마르게르타 젤러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스파이의 길을 걸었다. 유럽 대도시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며 군인·사업가·정치인 등과 교제하고 정보를 거래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마타 하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브루클린 박물관 홈페이지

마타 하리가 실제로 이중 첩자였는지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시 서부 전선에서 막대한 피해를 본 프랑스가 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마타 하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까지도 미인계를 앞세운 첩보 사건은 종종 발생하는데 ‘마타 하리’의 이름은 그때마다 소환된다. 예컨대 지난해 8월 ‘마리아 아델라’란 가명을 쓴 러시아 여성 스파이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합동군사령부가 있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다 발각되자, 언론들은 당시 이를 ‘러시아판 마타 하리 사건’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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