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우린, 지금 정말 괜찮습니까?
6만t 물 들이닥친 오송 지하차도
대낮 음주운전에 숨진 초등생
정말 이대로 괜찮습니까
길을 걷다 낯선 사람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리지 않을 자신이 당신에겐 있습니까? 지난 21일 이후로 전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알았을까요. 그날 아침에 눈뜰 때까지만 해도, 새까맣게 몰랐을 것입니다. 오후 2시, 새하얀 대낮. 서울 신림역 근처. 가해자 조씨가 경찰에게 말했듯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생면부지 처음 본 사람에게 갑자기 칼을 맞을 곳은 누가 봐도 아니었습니다.
상상조차 못 했을 겁니다. 2023년 대한민국 서울 땅에서 인과관계도 없고 까닭도 영문도 없는 폭력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그는 한낮의 서울이 안전하다고 믿고 길을 걸었을 겁니다. 그 상식적인 판단과 믿음이 생때같은 청춘을 앗아갔습니다.
상식을 깬 건 이 나라 행정기관입니다. 전과 3범에 소년부 송치만 14번 됐었던 사람을 다시 사회에 내보내면서 어떤 예방책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보호 관찰 조치를 내리지도, 의무적·정기적으로 정신감정이나 상담 치료를 받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풀려난 조씨가 아무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지낼 거라 여겼을까요. 아니면 그것까진 자기들 책임도 알 바도 아니라고 여겼을까요. 이 나라는 그토록 많은 참사와 사고를 겪었음에도 이런 일들을 미리 대비하고 신경 쓰기엔 아직도 불행과 비극을 덜 치러낸 것일까요.
한때는 그래도 비교적 안전한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배나 비행기를 불안에 떨지 않고 탈 수 있고, 도로가 무너질까 걱정하지 않고 차를 몰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총알을 맞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다고. 지난 7월 15일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입구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면서, 그 생각이 틀린 것이었음을 그만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알았을까요. ‘진입 금지’ 표시 하나 없는 4m 깊이의 지하차도를 그저 의심 없이 평소처럼 운전해 들어갔을 것입니다. 앞차가 갔으니 뒤차도 갔을 겁니다. 디지털 강국, 통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터지는 나라. 이런 곳에서 차랑 통제하는 쪽이 아예 위험을 알지도 못했다고, 위험을 알아차린 쪽에선 정보를 제때 알리지도 않았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다 먹통이고 불통일 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6만t의 빗물에 휩쓸려 14명이 순식간에 우리 곁을 떠나게 되리라고, 과연 어느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 보낸 아이가 무사히 교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거란 장담도 이젠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작년 12월 서울 강남 청담동 한 초등학교 교문 앞. 아홉 살 학생이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을 거뒀습니다. 오후 5시 무렵의 하굣길. 다른 곳도 아닌 학교 횡단보도 앞이었습니다. 아이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하고도 술이 깨지 않아 집까지 갔다 돌아온 음주 운전자에게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고 뺑소니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 대해 “음주량을 거짓으로 진술했고, 구호 조치도 소극적이었다”면서도 “형사 처벌 전력이 없고, 암 투병 중이며, 3억5000만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아홉 살 아이가 음주 운전 차량에 숨졌건만, 3억원 넘는 공탁금이 형벌을 크게 줄인 것입니다.
명목 GDP 2161조원, 경제 13위의 나라. 이 나라가 어느덧 상식적인 시민들이 최소한의 보호막이나 사회 시스템의 가장 소극적 가동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돼버린 건 아닌가요.
흰 꽃과 눈물로 뒤덮인 거리, 지하차도와 학교 정문을 보며 다시 묻습니다. 우린 지금 정말 괜찮습니까? 우린, 오늘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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