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원전 처리수, 과학만의 문제인가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2023. 7.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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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온 사회가 원전 처리수 방류 문제로 첨예하다. 용어로 인한 오해가 없도록 정의하고 넘어가자. 후쿠시마 원전 핵연료봉 냉각을 위해 사용된 냉각수와 지반 붕괴로 오염된 지하수를 통틀어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라고 한다. 일본 회사에서 이 원전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을 정화하기 위해 ALPS라는 다핵종 제거설비를 개발했고, 이 설비를 통해 처리되어 배출되는 것을 ‘원전 처리수’라 부른다.

과학적으로는 ‘ALPS의 유효성’과 ‘처리수의 안전성’이 논란의 핵심이다. ALPS는 삼중수소와 탄소14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의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점검 목표도 이 부분일 것이고, 일본의 협조로 진실성 있는 검증이 가능하다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다음은 처리수의 안전성 여부인데, 삼중수소와 탄소14가 소량이라 바다에 희석되면 안전하다는 견해와 생물 농축으로 해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로 나뉜다.

방사성 물질이란 어떠한 이유로 일반적인 원자보다 뚱뚱하고 불안정해진 원자를 말한다. 이 물질이 에너지를 방출하면 살이 빠져서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일반 수소보다 3배 무거운 삼중수소도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를 방출한다. 방출된 방사선은 정도에 따라 우리 몸의 세포나 DNA를 파괴하기도 한다. 자연계에는 원자력 발전과 무관하게 뚱뚱한 녀석들이 꽤 있다. 이 녀석들한테서 나오는 방사선이 ‘자연방사선’인데, 많은 질병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원전 처리수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자연방사선에 더해져 노화나 암을 가속할 수 있다는 점이 불안감의 원천이다.

현재로서는 명쾌한 결론은 불가능해 보인다. 방사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해도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되고, 인과성도 충분하지 않다. 성급하게 결론짓기보다는 국가와 개인의 다른 입장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RPN(위험 우선 수)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떠한 제품의 불량이 발생했을 때 그 불량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판단하여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불량이라면 그냥 불량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 ‘관리자 입장’이다. 소비자로서는 수많은 제품이 정상이라도, 나에게 온 제품이 불량이면 불량률은 100%다. 객관적인 확률에 근거한 관리자의 입장과 주관적인 확률에 근거한 소비자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광우병 사태를 보자. 미국산 소고기는 안정적으로 유통되고 있고, 인간 광우병의 피해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하지만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 병의 치사율은 100%다. 치사율은 낮지만 매년 걸릴 수 있는 질병과 평생 걸릴 일이 거의 없지만 치사율이 100%인 질병 중 무엇이 더 두려운가. 정부가 이 병에 걸릴 피해자가 0.01명도 안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경제적 손익을 계량했다면, 수입을 막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과 정부의 견해차는 분명하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위험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은 ‘그 낮은 확률에 내가 당첨되면 어떡하나’고 되묻고 있다. 정부가 비용-편익 분석을 객관적인 척도로 계산했다 하더라도, 개별 인간의 리스크 회피 성향은 모두가 다르다. 몹시도 냉철하게 제시된 숫자로 리스크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지만 객관적 지표보다는 모든 리스크의 회피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선호는 ‘자유’의 영역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라면 더욱 존중해야 한다. 현재 이 정책을 결정하며 비용보다 편익이 앞선다고 판단한 주체는 일본 정부다. 우리나라가 그 낮은 확률의 문제를 배제함으로 인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냉철한 이성으로 ‘이게 더 나은 방향이다’고 개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익에 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그 이익이 ‘국익’이라면 낮은 확률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개인의 불안한 마음’도 어루만져야 한다. 원전 처리수 방류 문제를 ‘과학의 영역’이라 힘주어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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