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자동차 강국 英, 미래차 인재 모아 부활 노린다

코번트리(영국)/김아사 기자 2023. 7. 25.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英 최대 미래차 밸리 ‘마이라 테크놀로지 파크’ 가보니
영국 ‘마이라 테크놀로지 파크’ 내 스웨덴 자동차기업 ‘폴스타’의 R&D 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폴스타5’시제품 차량의 도어 부품을 살펴보는 모습. 알루미늄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이 차량은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폴스타

지난 12일(현지 시각) 영국 중부 코번트리의 ‘마이라 테크놀로지 파크(MTP)’에 있는 스웨덴 전기차 업체 폴스타 R&D 센터. 엔지니어들이 새로 개발한 알루미늄 전기차 플랫폼을 테스트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알루미늄은 가볍지만, 강성이 낮은 게 흠인데 폴스타는 이곳에서 새로운 접착 공법을 고안해 이음 부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단단한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피트 앨런 R&D 총괄은 “MTP에서 제공하는 테스트 트랙, 충돌 시험장을 이용해 낮은 비용으로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MTP는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344만㎡·104만평)의 자동차 밸리로, 이곳에는 폴스타·도요타·보쉬·콘티넨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 등 35사의 R&D 센터와 생산 시설이 들어서 있다.

한때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을 자랑하며 자동차 강국으로 불리다 한순간 몰락한 영국이 전기차·자율주행 같은 미래차 기술로 산업 구조를 재편해 자동차 강국 부활을 꿈꾸고 있다. 특히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 센터를 MTP에 유치해 우수 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반전을 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픽=이지원
그래픽=이지원

◇업체, 기술, 사람을 모아라

영국은 한때 롤스로이스·벤틀리·레인지로버 등 최고급 자동차 업체를 보유한 자동차 강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들이 잇따라 해외에 매각됐고 기술 투자, 연구개발에서도 외국 경쟁사에 뒤처진 상태였다. 1950년대 글로벌 1위이던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019년 130만대, 지난해 77만대로 줄었다. 한국(376만대)의 5분의 1 수준이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건 생산 대신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다. 영국 정부는 2010년대 이후 ‘이노베이트 UK’ ‘패러데이 챌린지’ 등 기술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R&D 센터를 짓고 기존 제품 성능을 개선하면 투자비 절반을 지원하고 법인세도 대폭 할인해줬다. ‘혁신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해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하면서 5년간 원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이 하나둘 영국으로 향했다. 폴스타의 경우 본사는 스웨덴, 공장은 미국·중국에 있지만 R&D 센터만큼은 영국을 택했다. 이스라엘 자율주행 스타트업 리오토모티브는 200억원의 영국 정부 투자를 받고 MTP에 엔지니어링 센터를 지었다. 콘티넨털, 보쉬 등 글로벌 부품사도 이곳에 연구 시설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 만들어진 일자리만 3000여 개다.

모여든 기술과 사람은 더 큰 투자를 부르고 있다. 이달 초 인도 타타그룹은 영국에 40억파운드(약 6조60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했다. 유럽 최대 규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지난 5월 “새 기가팩토리 입지로 영국을 강력히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 내에도 생산 시설을 둬야 하는데 기술과 인재가 모인 영국을 기지로 검토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부품사들, 현대차만 바라봐선 안 돼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판매량은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생산은 계속해 줄어드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 450만대 이상이던 국내 생산은 지난해 376만대로 줄었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국내보다 해외에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국내 생산은 앞으로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국내 부품사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부품이 3분의 1에 불과해 전기차 전환이라는 산업 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부품사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올 초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전동화에 따라 국내 1만여 부품사 중 3200여 개가 소멸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업계 안팎에선 부품사들이 현대차 의존도를 줄이고 매출처를 다변화하는 게 필수라고 지적한다. 매출처 다변화를 위해선 해외로의 판매 확대가 필요하다. MTP에서도 국내 기업의 영국 사무소 유치를 위해 몇 차례 한국을 찾았다. 영국에 한국보다 많은 18개 브랜드가 있어 판로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MTP 관계자는 “유럽의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중소 부품 업체들에 기회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