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극한사회’를 살아가는 일
참담한 소식들이 연달아 전해지는 7월이다. ‘극한호우’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명피해만 사망 47명, 실종 3명, 부상 35명(7월23일 기준)을 기록했다. 인명피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14명이 사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보듯 호우 상황에서 행정의 안전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재해 대응에 대한 ‘국가의 실패’를 시사한다.
문제는 재난대응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 실패의 책임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호우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귀국 대신 예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방문을 결행했다. 이는 국민적 재난을 함께해야 할 대통령의 상징적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변명했다. 그렇게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부가 주재해야 할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으며 오송 참사가 일어났다.
귀국 후 윤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완전히 뜯어고쳐”라,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했다. 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질책한 것이다. 자신의 책임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부하직원을 책망하는 것은 사실상 책임 전가다.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대처 과정에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 채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던 모습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며 그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는 공직자의 태도는 사회를 망가뜨린다. 대통령의 뻔뻔한 태도를 보며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예감한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어떤 책임자도 믿지 않고, 자력구제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지자체와 정부 부처들이 안전통제의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시민들이 알아서 지하차도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자력구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악성 민원인’이라 일컬어지는 시민들의 악착같은 행태다. 그 이면에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국가를 믿을 수 없고 나만 살아남으면 되니, 악성 민원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다. 자력구제의 또 다른 사례인 ‘출세’를 달성한 전문직 엘리트들이 그 대열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전문직 자격증이 갑질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믿고서. 이것은 지난 18일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원인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교사의 죽음을 두고 ‘교권 추락’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지적에는 교사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학교의 책임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교권이 아니라 직장에서 취약한 상태에 놓인 청년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로 보는 게 맞다. 학생과 학부모의 문제 이전에 학교는 무얼 했는가? 아마도 학교는 기피 업무를 고인에게 배당한 채 부당한 민원을 겪는 그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을 것이고, 스트레스와 압박을 고인이 된 교사 혼자서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될 거라 여겼으리라. 책임져야 할 조직이 그 책임을 방기하면 책임의 무게는 아래로 흐른다. 결국 현장 일선에 있는, 말단에 있는 가장 취약한 이들이 ‘독박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렇게 한 청년노동자가 홀로 책임을 감당하다 끝내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지하차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들은 동료의 죽음을 아파하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애도한다. 이는 치유되어야 할 트라우마가 아니라 무책임한 사회를 대신해 느끼는 책임감의 발로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가운데 책임감을 느끼는 건 정작 시민들뿐이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재난 그 자체다. 극한호우가 아니라 극한사회다. 2023년 7월, 우리는 극한사회에서 죽어가고 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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