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사가 통치의 수단이 된 나라
수사는 범죄 발생 시 범인 색출을 위한 증거수집 활동이다. 압수수색, 구속, 피의자신문 모두 증거 수집의 일환이다.
결과에 대한 사후수습책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따라서 수사는 생산재이기보다 소비재에 가깝다. 이는 수사기관이 권력화하고 그 의존도가 높은 곳일수록 자율성 저하에 따른 소비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옳고 그름 등의 판단을 오직 수사기관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수사를 정치수단화하는 ‘수사 통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사 통치는 범죄에 대한 사회 일반의 비난과 혐오를 기반으로 반정부적 시선을 일거에 돌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 1년간 야권이나 비우호적 인사에 편중된 수사가 정치적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대신 법폭통치로 치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과 함께 전직 검사들이 대거 정치 주체로 등장하면서 수사 통치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제·금융 수사 특수통 검사가 금융전문가로, ‘검사 시절 입시비리 사건을 다뤄봤고, 특히 조국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했다’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이 “입시 전문가”로 둔갑했다. 듣도 보도 못한 수사인증 전문가인 셈이다. 심지어 시민 권익을 책임져야 할 국민권익위원회마저 인권침해 논란이 있던 옛 검찰 특수부 출신이 위원장이다.
수사나 수사경험에 의존하는 통치는 그 특성상 정책효과보다 절차적 흠에 치중될 수 있다. 이런 사고에서 적극행정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 또한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기 일쑤다.
정치는 시민의 평온한 삶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가치지향 행위다. 여기에는 국가와 국민을 둘러싼 경제, 사회, 과학, 역사, 철학 등 거대 담론거리가 즐비하다. 수사가 법절차에 따른 범인 색출을 위한 증거수집 행위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국정은 수사과정에서 엿본 식견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담론의 장이며 지향점 또한 다르다.
수필가 알프레드 조지 가드너는 <모자철학>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특수한 창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모자점 주인은 모자를 통해, 치과의사는 치아를 통해 판단하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검찰 출신 역시 평생 수사만 해온 경험으로는 세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균형 있게 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건폭’ ‘사교육 카르텔’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언급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에 착수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정을 수사의 눈으로만 살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수사 통치는 자칫 무늬만 법치일 뿐 법을 무기 삼은 법권(法拳)통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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