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법안 처리 강행…야당 등 반발
의사당 밖에서 수만명 시위대 격렬 시위…경찰, 물대포 동원 해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초강경 우파 정부가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과 우려 속에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기 위한 첫번째 법안을 끝내 강행처리했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24일(현지시간)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독회(讀會)를 열고 표결 끝에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야권은 협상 결렬에 반발해 3차 독회 후 진행된 최종 표결을 보이콧했지만, 여권 의원 64명의 찬성으로 법안 처리가 종결됐다.
이번 법 개정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되는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이스라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없게 됐다. 사법부가 정부의 독주를 최종적으로 견제할 수단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7개월간 이어져 온 '사법정비' 논란은 이스라엘 연정 내 강경론자들의 의도대로 일단락됐다.
사법 정비 법안의 설계자인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은 "사법 시스템을 개편하기 위한 역사적인 첫 번째 조처를 시행했다"며 추가 입법을 예고했다.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성향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오늘 처리된 법안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다. 이는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전날 심장 박동 조율기 삽입 시술을 받고 퇴원한 네타냐후 총리는 막판까지 측근 장관들과 면담하고 투표에도 참여했지만, 마지막 투표 진행 중 자리를 떴다.
크네세트는 전날 오전부터 법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야당 의원들은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밤샘 토론 26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이 네타냐후 총리 등을 면담하며 막판까지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결국 120석의 의석 중 64석을 가진 연정 측은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표결 진행 중에도 연정 내부에서 법안 처리를 6개월 연기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레빈 장관과 벤-그비르 장관이 연정 지지를 철회하겠다며 반대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여야 간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이 정부와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연정 측에 책임을 넘겼다. 이어 "정부와 연정은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는 있지만 나라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고 비판하며, "네타냐후 총리는 약해 빠졌다. 사실상 총리가 없는 상태다. 그는 극단주의자와 메시아주의자의 꼭두각시가 됐다"고 질책했다.
의사당 밖에서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인근에 천막을 치고 밤샘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날이 밝자마자 의사당과 인근에 거주하는 여당 의원 자택 근처에서 '인간 사슬'을 짜고 연좌시위를 벌이며 법안 처리 저지를 시도했다.
경찰은 의사당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쳐 시위대의 접근을 막았다. 또한 수천 명의 병력과 물대포 등을 동원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물대포를 머리에 맞은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다쳤고, 수십명이 체포됐다. 시위대는 법안 처리 뒤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양질의 정부를 위한 운동'은 개정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를 대법원에 청구했다.
150여 개 대형 기업과 은행 등이 참여하는 이스라엘 비즈니스 포럼도 이날 하루 총파업을 선언했다. 회원 수 80만 명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는 사법 정비 중재 실패의 책임을 여야 정치인들의 정치적 변덕으로 돌리면서 총파업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날 악시오스에 보낸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협과 도전의 크기를 감안할 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사법정비를 서두르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국민을 합의로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의회에서 법안 표결이 시작되자 텔아비브 증시의 주가지수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현지 화폐인 셰켈화 가치도 하락세를 보였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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