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는 노다지 아니라 동식물의 터전...채굴 신중해야”
수심 깊어질수록 생태다양성 오히려 높아져
해저광산으로 주목받는 심해, 망간단괴 등 채굴 신중해야
햇빛조차 들지 않는 깊은 바다에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풍부한 생태계가 있다는 탐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심해는 풍부한 자원 매장지로서 주목을 받아 왔으나 최근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아직 심해 채굴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만큼 면밀한 조사와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국립해양학센터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생태 다양성이 작을 것으로 예상되던 심해에서 오히려 수심이 깊어질수록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는 탐사 결과를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을 비롯해 전 세계 9개국 13개 연구기관의 연구자 21명의 참여로 이뤄졌다.
미국 스크립스해양학연구소는 1950년 태평양을 탐사하던 중 수심이 최대 5500m에 이르는 균열대 지역을 발견했다. ‘클라리온-클리퍼톤 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지역에서 이뤄진 추가 탐사에서는 다량의 망간단괴가 발견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망간단괴는 해저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금속산화물로 망간, 구리, 니켈, 코발트 같은 산업 원료로 쓰이는 금속이 풍부해 ‘검은 진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큰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클라리온-클리퍼톤 존은 심해 채굴 후보지로 큰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심해 생태계가 예상보다 더 풍부하고 그간 알려지지 않은 생물종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심해 채굴에 앞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릭 사이먼 레도 영국 국립해양학센터 연구원은 “다양한 생물이 심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심해 생태계 연구를 위해 클라리온-클리퍼톤 존에서 12차례의 탐사를 진행했다. 탐사 중 5만 마리 이상의 심해 생물의 사진을 촬영하고 서식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심해 생태계가 드러났다. 심해에서 생물들은 두 영역으로 분리돼 살고 있었다. 연산호와 거미불가사리처럼 비교적 단단한 외피를 가진 동물들은 수심 3.8~4.3㎞ 지역에 주로 서식했다. 반면 이보다 깊은 수심 4.8~5.3㎞ 지역에는 말미잘, 스폰지, 해삼처럼 외피가 없는 생물들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해양 생태계의 생태다양성이 풍부하다는 것도 드러났다. 수심이 깊어지면서 면적당 생물 수는 감소했으나, 생태다양성을 오히려 증가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생태다양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알려진 기념 통념을 뒤엎은 결과다.
연구진은 이번 탐사 결과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심해의 해저 활동과 관련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해양생물의 외피 성분인 탄산칼슘의 순환이 해양 생태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주세종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자원·환경연구본부장은 “심해에서는 수심이 깊을 수록 탄산칼슘의 양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는 만큼 외피를 가진 해양 생물이 없어 다양성이 작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라며 “그러나 실제 탐사 결과 다양한 종의 연체동물이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밝힌 연구”라고 말했다.
레도 연구원은 “그간 심해 생태계가 황폐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제대로 된 탐사가 이뤄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라며 “탐사 기술의 발전과 반복 탐사를 통해 심해에도 생물다양성이 크다는 연구가 최근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해 탐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심해 생태계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클라리온-클리퍼톤 존에서 찾은 미발견 해양생물 5000여종을 보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심해 생물의 90% 가량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같은 탐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해양학자들은 심해 채굴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심해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굴이 이뤄지면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니얼 존스 영국 국립해양학연구센터 수석과학자는 “당장 앞으로 다가 온 심해 채굴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탐사를 통해 해양 생태계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진화학’에 25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3-02122-9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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