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첫 법안 통과…"민주주의 후퇴 우려" (종합)
야권 강력 반발…기업·노동조합·예비역 등도 반대
(서울=뉴스1) 김민수 이유진 기자 =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극우 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사법 정비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네타냐후 총리와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독회(讀會)를 열고 표결 끝에 64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의회의 대법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확보다. 대법원은 이전에 판사들이 장관 임명을 막고 다른 정부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데 사용했던 개념인 '합리성'이라는 법적 기준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요컨대 정부 장관 임명이나 정책 결정 등을 번복할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이 제한받게 된 것이다.
합리성 원칙은 이스라엘 사법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원칙은 영국, 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 기준은 해당 국가의 법원이 특정 법률의 합헌성 또는 적법성을 판단하는 데 일반적으로 적용되며, 판사가 공무원의 결정이 '합리적'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기준은 올해 네타냐후 총리가 핵심 측근인 아리예 데리 샤스당 대표를 모든 장관직에서 해임할 때 사용되었는데, 이는 탈세 관련 전과가 있고 작년에 법정에서 공직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힌 그를 정부 요직에 임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스라엘 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국내외의 강한 반발에도 불과하고 이날 법안이 통과되면서 사법부의 권한은 무력화, 권력 견제 기관이 힘을 잃게 되면서 이스라엘 정부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앞서 네타냐후 정부는 의회가 법원의 결정을 무효화하고 정부가 대법관 인선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는 법안을 지난 3월 밀어붙였으나, 대규모 시위와 노동 쟁의, 군부 내 불안 등으로 잠정 연기했다.
이날 법안은 격렬한 반대 시위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네타냐후 정부 등 찬성 측은 이 법안이 선출직 의원들에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판사들에 대한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개선하고, 또한 정책 시행에도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편안이 통과되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극단적인 사법부 개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법 개편안은 과거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개혁을 촉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성문 헌법이 없고 준헌법적 기본법만 있는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대법원의 권력이 강했다. 사법개편안 지지자들은 이러한 대법원의 권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행정부와 입법부가 항상 집권 세력에 의해 사실상 통제되기 때문에 대법원은 크네세트와 정부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반대 측은 이번 개편이 국가 통치에서 견제와 균형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파괴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스라엘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고 소수자 권리, 표현의 자유 등 이스라엘 기본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네타냐후 정권의 국방부 장관인 요아브 갈란트조차도 합의를 위해 사법 개편을 연기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했다. 네타냐후는 올해 초 개편안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갈란트를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를 해임시키진 않았다.
한편 이스라엘의 150개 주요 기업들은 월요일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새로운 법안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의 주요 주가지수인 TA-35 지수는 2% 이상 하락했다.
군인들도 법안에 항의했다. 공군 예비역 1000명 이상은 이날 법안이 통과된다면 복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이스라엘의 안보 기관에서도 사법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는 법안이 통과된 후 예비역들에게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복무를 거부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우방국인 미국도 이번 개편안에 앞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네타냐후 총리에게 합의 없이 개편안이 통과되면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 문제는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활기를 보여주는 지속적인 시위 운동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인들이 강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며, 이는 양국 관계의 핵심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책 영역에서 합의를 찾는다는 것은 필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변화를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적"이라며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가능한 한 폭넓은 합의를 계속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라 본다"고 덧붙였다.
조합원 약 80만명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는 법안 통과 직후 정부가 일방적으로 입법을 강행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파업 선언을 준비했다.
이스라엘 비정부기구인 '양질의 정부를 위한 운동'은 대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하여 합리성 법안이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를 변경한다는 이유로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법 시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라엘 변호사협회도 이미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날 밝혔다. 변호사협회의 집행부인 변호사 협의회는 23일 '합리성' 무효화 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에 취소를 청원하기로한 결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이 법안을 폐기하고 법원 판결이 있을 때까지 시행을 막아달라는 청원은 화요일에 법원이 개원할 때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대법원이 법원의 권한을 박탈하는 법 자체를 불합리하다고 판결해 무효화한다면, 이는 정부와 법원이 서로 대립하는 헌법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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