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개성공단 지원재단 해산 검토… “남북대화 환상 안 돼”[인사이드&인사이트]
직원 100명 이상 감축 유력… “대화 전무한데 조직 유지 안 돼”
文정부 때 강화 교류협력 축소… “北실체 알리고 통일 준비해야”
대통령실 “내부인사론 안 변해”… 통일부 장차관 첫 외부 발탁
통일부에선 지난달 29일 장차관이 모두 외부 인사로 발탁되는 등 초유의 인사가 단행되면서 ‘윤석열 정부 통일부 2기’로의 대전환이 예고됐다. 장차관이 외부 인사로 채워진 건 통일원에서 통일부로 개칭한 1998년 이래 처음이다. 특히 대통령실의 통일비서관까지 이번에 통일부가 아닌 외부(김수경 한신대 교수) 인사 중에서 발탁됐다.
통일부의 기조 자체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호 장관 후보자는 지명 직후 가장 먼저 “원칙을 갖고 북핵 문제를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이달 2일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 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 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는 윤 대통령 발언을 소개하면서 조직의 변화 방향을 암시했다. 집권 2년 차를 맞았지만 변화된 대내외 외교 환경과 괴리된 방향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개혁 수준으로 바꾸기 위해 고위직을 물갈이했다는 것이다.
● “내부 인사론 조직 근본 변화 못 해”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일부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결정적 트리거는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삽입됐다가 빠진 면책 조항 논란이었다. 통일부는 앞서 4월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을 공개하면서 한글판에 없던 면책 조항을 추가했다. 탈북민 증언으로 이뤄진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해 우리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한 것. 이후 “법적 문제를 중시하는 외국 문화를 감안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이 문제로 대통령실 긴급 감찰까지 받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가 처음으로 발간, 공개하면서 북한인권보고서에 힘을 줬던 만큼 통일부가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식을 줬다”면서 “그 논란 이후 윤 대통령이 크게 실망했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있었던 사건들로 일부 간부들이 내부 감찰을 받는 상황 등도 개편 착수에 불을 지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통일부 차관까지 내부 출신을 배제한 건 결국 내부 인사로는 조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런 배경으로 통일부 2기가 출범하게 된 만큼 1년여간 이어져 온 정치인 권영세 장관 체제의 통일부 1기와 비교해도 크게 변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김 후보자는 권 장관이 그간 강조했던 정권 간 대북 정책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이어달리기 기조’에 대해서도 사실상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대북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하지만, 변화된 상황에서는 남북 간 합의를 선별적으로 고려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변화된 상황”은 북한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대남 겨냥용 전술핵무기 사용까지 거론하며 투발 수단인 탄도미사일 발사에 매진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북한 김정은 면전에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질의서에선 “원칙에 입각해 올바른 남북관계를 정립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증진과 북한 실상을 알리는 작업 등을 통일부 2기의 중점 과제로 내세웠다. 또 대북 경제 지원 등에 대해선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현 정부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 MB 정부 때처럼 대규모 인력 감축 관측
통일부 조직 개편 방향은 인력 감축 칼바람이 불었던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와 유사한 양상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후보자는 물론이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안보실 출신이란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통일부 폐지를 검토했다가 존치로 선회했던 이명박 정부는 통일부 본부인원 290명 중 28%에 이르는 80명을 줄인 바 있다. 소속기관 정원까지 모두 합하면 그 규모는 550명에서 470명으로 대폭 줄었다.
현재 통일부와 소속기관 정원은 610명이다. 하지만 통일부 조직개편을 통해 100명 이상 감축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부서 조정안이 최종적으로 나오고 나서 (감축할) 인력 규모가 확정될 것”이라면서도 “규모에 비해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서가 많아 대규모 인력 감축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라고 했다.
특히 남북회담본부나 남북출입사무소,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등 전임 정부 때 기능이 강화됐던 소속·산하기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해산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 협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관련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도 했다.
남북교류협력 담당 조직들의 추가 축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를 4월 폐지하고 교류협력실을 ‘국’으로 축소했는데 더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현 정부가 강조하는 북한 인권 문제나 정세분석 기능과 관련한 조직은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통일부 내부 검토 과정에선 이미 정세분석국을 ‘실’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인력 감축 기조에서 부서를 확대하는 건 행정안전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상반기 조직개편으로 북한정보공개센터장 자리를 만들어 국장이 두 명인 상황이라 ‘실’로 확대하는 데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통일부가 가장 강화해야 할 부분은 정보 분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통일부는 올해 인도협력국을 인권인도실로 확대 개편하면서 북한 인권 개선이 현 정부 통일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인권 관련 조직은 규모나 기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 “통일부 정체성은 통일환경 조성”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조직의 정체성이 잡혀 있지 않다 보니 정권의 변화에 따라서 조직 문화가 수동적으로 변화한 측면이 크다”며 “무엇보다 통일 환경을 만들고 통일 준비를 해나가는 조직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남북대화에 대한 일종의 환상으로 북한의 실체를 왜곡해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통일을 위한 내적인 역량 강화, 북한의 실체 알리기 등이 새 정체성의 큰 축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북한이 현 도발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이 큰 만큼 새로운 통일부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이 이번 개편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금 통일부의 기조나 구성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부터 2007년 남북 정상회담까지의 7년이 기준이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단 70년 동안 교류협력 기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조직에 대한 평가가 교류협력, 남북대화 등을 기준으로 이뤄지다 보니 계속 존폐 위기가 나왔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통일이야말로 장기적 호흡이 필요한 만큼 조직의 위상 등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햇볕정책의 관성으로 유지된 통일부가 남북관계 단절로 조직이나 기능이 비대해진 건 당연한 일”이라며 “그간 축적된 자료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정세나 상황에 맞게 조직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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