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일상의 희로애락으로 내려온 화가의 시선[미술을 읽다]
그는 당시 중요한 미술의 종류로 여기지 않았던 일상생활의 장면이나 정물화도 그렸는데 그중 하나가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이 그림에는 어두운 방 안에 신비스럽게 광선이 비치는데, 한 소년이 꽃병의 장미 쪽으로 손을 뻗다가 도마뱀에게 물려 깜짝 놀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작품의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쾌락을 상징하는 과일들이 놓여 있고, 한쪽 어깨를 노출하고 머리에 장미꽃을 꽂은 이 소년의 얼굴에 드러난 아픔에 관심을 가지고 묘사했던 것은 양성애자였던 카라바조의 비밀스러운 내면의 표현일 수도, 사랑의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발그레한 뺨과 부드러운 얼굴의 미소년들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과일 바구니를 안고 있는 다른 몇 점의 작품도 그의 성적 정체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크 시대로 불리는 17세기에는 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르에 새로운 문화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시각미술은 강력한 권력과 부를 축적한 절대주의 왕과 귀족들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주는 매체가 되었다. 이와는 다르게 중산층의 수집가들을 상대로 독자적인 미술을 발전시킨 곳이 네덜란드였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이번 박물관 전시에서는 젊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말년에 파산하고 시련을 겪었던 렘브란트가 죽기 몇 달 전에 그린 자화상을 주목해야 한다. 걱정과 근심으로 지쳐 있으면서 우리를 조용히 건너다보는 그의 자화상은 마치 자신의 영혼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유럽은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기폭제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대혁명은 권력의 이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제도와 관습을 무너뜨렸다. 또 다른 변화는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산업혁명의 혜택으로 유럽인들이 누렸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었다. 미술가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사회의 감각과 인간을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들은 신화, 종교화, 문학과 같은 주제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멋있는 근대적 삶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장의 시선’ 전시는 여기까지다. 20세기의 미술에서는 인물이 거의 사라지고 추상미술이 대세가 되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같은 화가는 지나치게 물질적이 된 서구문화 전반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들이 추구하던 유토피아를 선, 형태, 색채의 무한한 형식주의와 내용으로 구현하면서 모더니즘 미술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극도의 심미적 표현으로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불평을 듣게 한 모더니즘 미술은 196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 대체되면서 미술가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인간의 경험을 새롭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신의 세계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세계는 아직도 끝없는 탐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김영나 서울대명예교수·전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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