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여름의 전개

2023. 7. 2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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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계절이 그리운 누군가를 닮아 있다는 시인의 문장을 들여다보자니 문득 골똘해진다.

여름은 너무 덥고 너무 습하고 너무 긴데, 이런 여름이 도처에 흩뿌려놓은 모든 지난한 순간이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데 소용되겠구나.

만약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은 여름"을 꼬박 지내게 되겠구나.

나 역시 여름에 소중한 이를 잃어보았는데. 그래서인지 이 같은 "여름의 전개"는 아픈 한편 슬며시 안도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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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한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여름 속을 걸어간다

유모차 안의 아이는 여름을 손에 쥐고서
여인은 아이의 여름을 감싸며
눈을 맞춘다

바라보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라고
아이와 아이 엄마는 함께 쥔 여름 안에서 더 닮아가
같은 여름을 기르고

나에게도 나를 기른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나를 기른 사람과 닮아서 나를 기른 사람에게 깃들어
나의 여름은 나를 기른 사람과도 닮아 있었다
(후략)
지금 이 계절이 그리운 누군가를 닮아 있다는 시인의 문장을 들여다보자니 문득 골똘해진다. 여름은 너무 덥고 너무 습하고 너무 긴데, 이런 여름이 도처에 흩뿌려놓은 모든 지난한 순간이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데 소용되겠구나. 만약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은 여름”을 꼬박 지내게 되겠구나. 나 역시 여름에 소중한 이를 잃어보았는데…. 그래서인지 이 같은 “여름의 전개”는 아픈 한편 슬며시 안도하게도 된다. 유모차 속 아이는 금세 키가 자라고 엄마는 그만큼 작아지겠지만, 유모차 같은 건 쉽게 낡아 시간 저편으로 사라지겠지만 계절은, 계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나를 기른 사람과 닮아 있는 여름. 나의 여름.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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