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현대 자본주의와 불로소득 사회

2023. 7. 2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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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할 때 받던 임금보다 더 많은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에 대한 정부 비판이 있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불로소득으로 흥청대는 이들을 몰아내려는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노동 소득 또는 산업 생산 수익의 일정 부분을 꾸준히 이자로 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봉건귀족이나 다름없다.

스스로 노력해 좋은 삶을 이룩할 수 없는 사회는 청년들의 출산 파업 및 노동 거부 문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폭발적 분노 감정과 위태로운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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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름으로 지대 착취 제도화
경제, 공적 견제·사적 이익 균형 회복해야
얼마 전 일할 때 받던 임금보다 더 많은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에 대한 정부 비판이 있었다.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을 실현하며 살기에 우리에겐 불로소득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있다. 그렇다고 ‘시럽급여’라면서 이들을 비난하는 건 혐오 표현에 불과하다.

실업급여가 살림이 나아지는 수단인 게 나는 더 이상하다. 질 좋은 일자리를 대량 창출해 이런 일을 아예 없애는 데 신경 쓰는 게 큰 정치일 테다. 권력이 덕 없는 소인처럼 굴면 내몰린 이들은 손발 놓을 곳조차 없어지는 법이다.

‘문명의 운명’(아카넷 펴냄)에서 마이클 허드슨 미국 미주리대 명예교수는 인류 전체를 위기로 몰고 있는 거대한 불로소득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호소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건전한 산업자본주의와 약탈적 금융자본주의로 나뉜다. 20세기 초까지는 산업자본이 근대 경제를 이끌었다. 산업자본주의는 지대(rent)를 이용해 배 불리는 세습지주 계급과 약탈적 고리대금으로부터 경제를 해방했다.

지대 사회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富)가 세습귀족 손아귀에 돌아간다. 시쳇말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셈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에게 자유시장이란, 사악한 지대로부터 해방된 시민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산업을 일구어서 부의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해방공간이었다.

지대 수취자, 즉 랑티에(rentier)는 본래 임대수익과 국채이자를 수입원으로 삼는 귀족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직접 생산하는 물건도, 손수 운영하는 기업도 없이, 이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고지대로 임대하고 쌓인 돈을 고금리로 빌려주면서 살아갔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불로소득으로 흥청대는 이들을 몰아내려는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저자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지대 수취자 계급이 되돌아오면서 금융자본주의가 전개됐다. 이들은 금융·부동산 공생체였다. 은행, 보험회사 등을 세워서 저금리로 자본을 조달한 후 토지와 건물을 사냥해 자산거품을 일으키고,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서 개인 또는 산업자본에 이를 임차해 지대를 뽑아냈다. 노동 소득 또는 산업 생산 수익의 일정 부분을 꾸준히 이자로 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봉건귀족이나 다름없다.

석유나 천연가스, 금이나 은 등 천연자원 시장을 독점해서 고수익을 올리거나 통신, 철도, 수도, 방송 등 국가 인프라의 사유화(민영화)를 통한 지대 창출도 이들의 주요 수법이다. 산업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인프라 독점을 통해서 이들은 영구적인 지대를 창출한다. 20세기 현대사는 금융자본의 힘이 산업자본을 압도한 시기이고, 이들이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국가 운영을 장악해 지대 착취를 제도화한 새로운 봉건시대이다.

저자는 임금과 이윤이 지대를 넘지 못하는 사회는 위기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다수의 노력이 소수의 부로 집중돼 불평등이 심화하고 좌절과 절망이 일상화하는 까닭이다. 스스로 노력해 좋은 삶을 이룩할 수 없는 사회는 청년들의 출산 파업 및 노동 거부 문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폭발적 분노 감정과 위태로운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

저자는 공적 견제와 사적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체제를 회복함으로써 금융·부동산 공생체, 즉 불로소득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와 경제의 건강성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불로소득을 이야기할 때 크게 새겨들을 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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