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회 ‘사법부 무력화’ 법안 가결…정국 ‘시계 제로’
야권·시민단체 의회 앞 “정치권 합의” 철야농성 했지만 외면
노동계 전면파업·예비군 복무 거부 예고…시민들 거센 반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극우 연정이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24일(현지시간) 끝내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전날부터 예루살렘 의회(크네세트) 주변에 텐트를 치고 철야 농성을 벌였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입법 폭주를 저지하지 못했다. 예비군들이 복무 거부를 선언하고 노동계가 전면 파업을 예고하는 등 사법개편을 둘러싼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는 이날 장관 임명을 포함한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사법부가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 2·3차 표결을 잇달아 진행했다. 이스라엘 의회는 총 120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을 비롯한 보수 연정이 64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행법상 법안 제정까지 세 차례 독회와 표결을 거쳐야 한다. 보수 연정은 지난 10일 1차 표결에서 의원 64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일각에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법개편 강행에 우려를 표하고,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야권과의 물밑 협상을 이어가는 등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 선회를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전날 심박조율기 삽입 시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네타냐후 총리는 “내 상태는 아주 좋다. 입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보수 연정도 애초 24일 2차 표결만 치르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3차 표결까지 강행하는 속전속결 전략을 택했다.
의회는 전날 오전 10시부터 이날 오후 1시까지 약 27시간의 릴레이 토론을 펼쳤다.
야권은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중대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걸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민주주의 퇴보를 일으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140건이 넘는 수정안을 제출하며 지연 전략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행정부 결정이 법과 관례, 국민 정서 등에 반한다고 여겨질 때 대법원이 합리성 판단 기준을 적용해 이를 제지할 수 있도록 해왔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와 보수 연정은 사법부가 지나치게 행정부 권한을 침범한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의 합리성 판단 기준을 삭제하는 사법개편을 추진했다.
이스라엘 여권은 1차 표결을 마무리한 뒤 사법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펼쳐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0일 이스라엘 전역으로 생중계된 TV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권력분립이 무너졌다고 느끼고 이를 정부가 바로잡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반정부 시위대는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 주요 도시에 집결해 밤샘 시위를 벌였다. 앞서 80만명의 회원을 지닌 이스라엘 최대 노동운동단체 히스타드루트(노동자총연맹)는 지난 23일 오후까지 정치권의 합의를 촉구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히스타드루트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이스라엘군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예비군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전날 공군 전투기 조종사 등을 포함한 1만명의 예비군이 복무 거부를 선언한 데 이어 이날 정보부대 예비군 1000명이 보이콧에 가세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이 사실상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사회의 고통스러운 분열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며 “더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국가를 추구하는 세력과 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목표를 지닌 세력 사이의 의견 불일치 속에 이스라엘이 민주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취약한 정치 체제에서 유일한 민주적 견제 장치가 약화했다”며 극우 내각의 팔레스타인 공습과 유대인 정착촌 확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도 휘청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이스라엘 IT 스타트업 70%가 일부 사업을 이미 해외로 이전했다고 보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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