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극우세력끼리 사법개혁안 처리…야 “수치스럽다”
건국이래 최대 반정부 시위…미국과도 긴장 고조
이스라엘 건국 역사상 최대 반대 시위를 부른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부의 사법정비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는 24일 정부의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핵심 조항을 담은 사법개혁안을 통과시켰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크네세트는 이날 오후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독회를 열고 야당의 반대 속에 표결을 강행해 가결 처리했다.
이 법안은 네타냐후 정부의 강경 우파 연정에 참여한 64명의 의원이 찬성해 통과됐다. 56명의 야당 의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표결을 강행하려는 여당 의원들에게 “수치스럽다”고 고함을 치며 저항하다가, 결국 투표를 거부하고 퇴장했다. 이 법이 통과됨에 따라,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대법원이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지게 됐다. 이스라엘 행정부의 독주를 사법부가 견제할 힘이 대폭 축소되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추진한 이 사법정비안은 자신의 부패 비리가 계류중인 사법부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네타냐후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사법정비’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의 매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특히 이스라엘 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비군들도 훈련과 복무를 거부하며, 사법정비안에 반대해 이스라엘의 안보 위기도 고조됐다. 이에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사법정비안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그를 해임하려다가 반발에 밀려 연기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지난 3월 사법정비 처리를 연기한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자신의 지지층인 극우 유대민족주의 세력 및 초정통파 유대교 세력을 의식해 이를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왔다. 네타냐후는 최근 탈수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24일 법안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크네세트는 전날인 23일부터 토론에 들어갔고,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네타냐후 총리를 면담하며 타협을 도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종주의 범죄 경력이 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치안장관 등 극우 성향 각료들과 사법정비 설계자인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의 반대로 무산됐다. 네타냐후 연정에 참여중인 벤그비르 등 극우 세력들은 연정 철수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야당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이 정부와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우리는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날 크네세트 의사당 밖에서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천막을 치고는 밤샘 시위를 벌였다. 대기업과 은행들이 참여하는 하루 총파업도 벌어졌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악시오스>에 보낸 성명에서 수많은 분열을 촉발시키는 법적 변화를 밀어붙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현재 직면한 위협과 도전들을 감안하면,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를 성급히 밀고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초점은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합의를 찾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네타냐후의 사법정비 추진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분열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일관되게 표명해왔다.
네타냐후의 사법정비 강행으로 이스라엘에서 시위와 대결은 더욱 고조되게 됐다. 건국 이후 최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사태는 중동 정세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는데, 이번 사태로 바이든 행정부는 네타냐후 극우 정부와의 갈등이 더 고조되게 됐다.
수천명의 이스라엘 예비군들은 국가를 독재로 가는 가도로 올려놓는 조처를 취하는 정부 아래에서는 복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예비군과 현역 군들의 이반도 심화되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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