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안내 종이가 붙어 있었던 매장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지켜보다가 ‘또 카페야?’ 했던 적이 꽤 있진 않은지.
서울에만 2만50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다고 한다. 카페 후기는 넘쳐나고 극찬 리뷰를 보고 찾아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많고 많은 카페 중에 보물찾기하듯 디저트가 색다른 카페 두 곳을 발굴해 봤다. 맛과 멋을 모두 잡은 서울의 이색 카페를 소개한다.
성수동에 위치한 오푸. 1960~70년대에 지었다는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다.
간판이 없어 여기가 맞나 싶을 수 있지만 1층 문에 붙어 있는 ‘OAFU’ 스티커를 발견했다면, 또는 담벼락에 붙어 있는 특이한 디저트 사진 포스터를 봤다면 맞게 찾아온 것이다.
3층에 다다르니 낡은 건물 외관만 보고는 상상하기 힘든 힙한 느낌의 카페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입구 좌측 통로 벽 전체에 설치한 대형 거울, 매장 가운데 놓인 기다란 공유 테이블, 가로로 쭉 뻗은 창문과 은색 빛으로 반짝이는 카페 주방.
여기에 디제잉 공간과 경쾌한 음악 소리까지 각각의 매력이 한데 모여 활기찬 기운을 마구 뿜어낸다.
건물 외관과 내부가 전혀 다른 상반된 느낌을 내고 싶었다는 사장님의 의도가 잘 드러난 인테리어다.
매장 곳곳에서 존재감을 은은하게 풍기는 조명에도 눈이 간다. 모양이 각기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매장 소품 하나하나에 사장님의 취향이 듬뿍 들어가 있다. 한때 디제잉을 했던 경험을 살려 음악도 날씨나 계절에 따라 매번 바꾼다고 한다.
OAFU는 ‘아워 액츠 팔로우 어스(Our Acts Follow Us)’의 약자로 ‘우리의 행동은 우리를 따라온다’라는 뜻이다.
오푸의 문화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유정남 대표의 운영 철학을 담았다.
카페 내부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 보니 오푸를 대표하는 디저트 오! 소파(Oh! Sofa)가 나왔다. 예쁜 색감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 접시에 연분홍색 소파 케이크와 러그 모양으로 만든 초록색 소스가 담겨 나왔다.
이 정도면 디저트가 아니라 작품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자마자 카메라 앱을 켤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다.
언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15분 정도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 고체와 액체 사이의 중간 형태를 띠는 이탈리아 디저트 세미프레도(Semifreddo)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케이크에 손을 대는 것이 너무 아까웠지만 맛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을 갈랐다.
숨어있던 딸기잼과 커스터드 크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적당히 달면서 부드럽고 달콤한 딸기 크림이 입 안을 감싼다.
피스타치오로 만든 초록색 소스에 케이크를 찍어 먹으니 고소함과 단맛이 어우러져 무척 조화롭다.
아메리카노나 탄산음료와 함께 먹으면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배 꼭지가 무척 귀여운 디저트 오! 페어(Oh! Pear)도 오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저트다. 해외에서는 배를 디저트로 많이 먹는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대중화되지 않아 서양 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디저트 속은 캐러멜과 살구잼으로 채웠다. 특히 배 밑에 깔린 빨간 라즈베리 소스가 색깔만큼이나 상큼해서 초콜릿으로 만든 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여기에 에이드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마지막 디저트는 오! 치즈(Oh! Cheese)다. 모차렐라 치즈인가 싶었는데 크림치즈다. 유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브레 쿠키와 함께 먹으니 맛이 훨씬 풍부해진다.
치즈케이크를 해부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유 대표의 아이디어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노란색 레몬커드와 초록색 완두콩으로 완성한 플레이팅이 오! 치즈를 한층 더 먹음직스럽게 만든다.
오! 치즈는 트러플 라테와 먹으면 잘 어울린다.
이제는 오푸의 시그니쳐 음료들을 맛볼 차례. 트러플 라떼와 자두 에이드를 주문했다. 트러플 라테는 유 대표의 최애 메뉴다. 어느 날 파스타를 먹고 있다가 커피에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개발했다.
커피에 트러플이라니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맛이었지만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의구심을 풀 수 있었다. 트러플 향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시도해 보자.진한 커피에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져 두 배로 맛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너무나 매력적인 자두 에이드도 놓치면 아쉽다. 어릴 때 한 번쯤은 먹어봤을 법한 자두 사탕 맛이 생각난다.
에이드는 굉장히 흔한 음료인데 자두 에이드는 처음 접해보는 거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유 대표와 오랫동안 함께한 메뉴라고 한다.
달콤한 디저트가 당기는 나른한 오후에 오푸는 좋은 대안이다.
청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동네 청운동. 그곳에서 식물로 뒤덮인 건물을 찾아보자. 1층에 동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역시 간판이 없다. 사장님의 할아버지가 사용하셨다는 낡은 자전거 한 대가 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지도에서는 이 카페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블로그 후기를 보니 동감을 다녀온 사람들의 평이 무척 좋다. 궁금증 한가득 안고 가게를 찾아갔다.
매장에 두 발을 내딛는 순간 직접 가봐야 느낄 수 있는 이곳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방문객들의 글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미닫이문 하나로 이렇게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원목 가구가 주는 아늑함과 아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전구 조명, 잔잔한 음악과 새소리 그리고 여러 종류의 가림막이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화면에는 다 담기지 않는다는 연예인의 실물이 이런 느낌일까. 사장님이 대체 어떤 분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사장님과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전 동감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를 먼저 맛봤다.
메뉴 이름이 ‘김치’다. 빨간 김치가 아니라 김과 치즈가 들어가서 김치다. 차가운 크림치즈를 김으로 돌돌 말아서 그 위에 달짝지근한 꿀과 통 들깨를 뿌렸다.
설명만 들었을 땐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는 맛이다. 5분 후에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해서 잠시 기다린다.디저트를 젓가락으로 먹기는 또 처음이다.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김치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동공이 저절로 확장된다. 한 마디로 “맛있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아직 3점이 남았는데 사라진 한 점이 벌써 아쉽다.
입에서 금방 녹아 없어지는 김, 부드럽고 밀도가 높은 크림, 그리고 달콤한 꿀과 고소한 들깨의 사중주가 펼쳐진다. 이 분위기, 이 맛 정말 나만 알고 싶다.
카페 주방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테이블 앞에 앉아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카페 운영은 올해로 8년차지만 청운동으로 온 지는 1년 반 정도 됐다고 한다.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그래서 카페 이름도 동감으로 지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즐기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체 왜 지도에서 동감을 찾아볼 수 없는지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장사가 잘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험문제를 찍었는데 얼떨결에 맞은 느낌이라며 한 문제라도 정직하게 풀어서 떳떳한 점수를 받고 싶었다고 한다.
문을 연 후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지만 사장님 눈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여서 지도에서 가게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사실 자신은 화가 나기도 하고 진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는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좋은 자극이 됐다고 했다.
그 이후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며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이상적인 가게의 비율이 100%라면 지금은 80% 정도까지 도달한 것 같다고 했다.
카페의 콘셉트가 따로 있냐는 물음에 콘셉트를 잡고 카페를 운영하는 건 아니고 편안함과 아늑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별히 가림막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면 음식이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것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사장님의 세심함과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손님들이 정말 편안히 쉬고 있는 표정을 볼 때 너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매장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차분함’이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정말 휴식하는 느낌이 든다.
일반 카페에서는 보기 힘든 천 가림막, 나무 가림막이 동감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동감이 어떤 카페가 됐으면 좋겠는지 물었더니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2순위 카페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좋은 걸 말할 때 1순위, 2순위를 나누는데 사장님은 1위에는 관심 없으니 이곳이 갈 데 없고 지쳤을 때 와서 맘 편히 쉴 수 있는 카페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지도에 나오진 않아도 왜 단골손님이 많은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