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어느새 목소리 큰 학부모가 설치는 정글이 됐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는 ‘멘붕’…혼자 끙끙 앓기만
“극성 학부모들 제어하고 교사에 방패막이 될 조치 시급”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억울하게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지난 3월, 같은 반 학부모가 A씨의 아들이 ‘친구를 밀치라고 시켰다’ ‘괴롭힘을 보고만 있었다’고 주장하며 학교에 신고한 것이다. A씨는 “친구들 증언을 들어봐도 (아들이) 누굴 밀치지도 않았고, (괴롭힘이 있었다는) 화장실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면서 “추후 ‘조치 없음’ 처분을 받긴 했지만 가족들은 두 달간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렸다”고 했다.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매일같이 전화를 걸면서 교실 분위기는 더 악화됐다.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자 담임교사는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아이들을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도록 지도했다. 그러던 중 해당 교사는 여름방학을 2주 앞두고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병가’를 냈다. A씨는 “극성 부모들이 있으면 교실이 그냥 무너져 내린다”면서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을 도저히 감당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알려지자 학부모들도 “교육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향신문과 24일 인터뷰한 학부모들은 “소수의 극단적인 학부모를 제어하지 못하면 교사와 아이들, 다른 학부모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A씨는 소수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할 뿐 아니라 다른 학생·학부모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가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다가 사소한 지적을 받고 울음을 터뜨렸는데, 담임교사가 아이의 부모에게 ‘원하지 않으시면 앞으론 안 가르치겠다’고 얘기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교사들은 늘 겁을 먹은 채 행동하고 최소한의 훈육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고 했다. 그는 “학교는 목소리 큰 소수만 설치는 ‘정글’이 돼버렸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생 딸이 있는 B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B씨의 딸은 휴대전화가 망가진 친구에게 무심코 건넨 말로 학교폭력 신고를 당했다. 피·가해자 분리조치로 하루 출석정지까지 받았다. B씨는 “억울한 심정을 얘기하려 학부모 상담을 하러 갔는데 막상 가보니 담임교사의 초췌한 얼굴부터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B씨는 “상대 부모에게 매일 전화로 시달렸다는데, 빨리 수습하려고만 했던 교사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돌이켜 보면 일부분 이해도 된다”고 했다.
이들은 학교 당국과 교장·교감 등 관리자가 교사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B씨는 “누군가 중간에서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를 차단해주는 방패막이가 돼줘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면서 “작은 하소연부터 무리한 요구까지, 모든 것을 담임교사가 혼자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교권을 지키겠다’며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시동을 걸고 나선 데 대해 복잡한 심경도 내비쳤다. A씨는 “학생 인권 확대가 교육활동을 침해한다는 식의 대립 구도는 발전적 방향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다만 “학교가 담임교사를 혼자 내버려 두고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면서 “학교는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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