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도 금방 풀려나…주가조작 넷중 한명은 재범, 한탕 부추긴다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이윤식 기자(leeyunsik@mk.co.kr),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2023. 7. 2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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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재판 20%는 사기·공갈
10명중 4명은 실형도 면해
전세사기 1년새 3000% 증가
주식시장 3대 불공정거래
약한 처벌에 재범률 23%
사회지도층 부패 반복되며
공동체 신뢰 무너진 상황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불신사회가 된 배경에는 지난 10년동안 사회 리더들이 보인 부패가 자리합니다. 앞에서는 ‘정의’를 외쳐놓고, 뒤에서는 반칙과 편법을 저질렀습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한 법을 더 이상 시민들이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국내 유명 사립대학교에서 15년 넘게 법학을 가르쳐 온 A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대한민국이 ‘불신사회’로 떨어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권력자들이 앞장서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도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불법행위가 만연해졌다는 진단이다. 그는 “바가지·전세사기·주가조작·보이스피싱 등 한국 사회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행위들은 유형만 다를 뿐, 서로를 속이고 신뢰를 무너뜨리는 범죄라는 점에서 그 뿌리가 같다”고 말했다.

A교수의 말처럼 올해는 유독 공동체 신뢰를 저해하는 범죄행위가 많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부동산 계약 관련 지식이 부족한 20~30대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전세사기, 개인 투자자를 속여 거액을 빼돌린 주가조작이 잇달아 적발되기도 했다. 범죄 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래시장과 지역축제에 만연한 바가지 역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경찰청이 24일 발표한 전세사기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3466명을 검거하고 367명을 구속했다. 몰수ㆍ추징보전 금액은 5억5000만원에서 172억원으로 증가했다. 증가율은 3040%였다.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최진혁 의원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에서 10개월간 총 2709건의 전세사기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피해 금액은 6935억원으로 집계됐다.

‘불신 대한민국’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도 사기와 공갈의 죄로 인한 형사재판 사건은 총 6만 3185건에 달했다. 전체 재판 사건 31만 9542건 중 19.7%를 차지했다. 범죄 유형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사기 범죄는 형사재판 사건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일상화’된 범죄였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기 수법이 진화하고 고도화되면서 사람들에게 또 다시 불신을 주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솜방망이 법 집행이 이 같은 불신사회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사기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탓에 사기성 범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가조작이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9년 12월 발간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및 기업공시 판례 분석’에 따르면, 61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운용한 A씨는 통정매매 수법으로 시세를 조종했지만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한 비율은 61.5%로 피고인 5명 중 2명은 실형을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다단계 금융 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가 2009년 징역 150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때문에 ‘사기나 주가조작을 저지르더라도 중형을 살지 않고, 잠시 형을 살다오더라도 거액을 챙길 수 있다’는 식의 그릇된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증권시장 3대 불공정거래로 처벌받은 이들의 23%가 재범 이상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축제에서 불거지는 바가지 역시 마땅한 제재가 없는 탓에 매년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사기 범죄와 관련해서 늦었지만 처벌 강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내년 사기범죄 양형기준 개정 방침을 발표했다. 개정이 이뤄진다면 14년만의 변화다. 양형위는 보이스피싱 사기·전세사기 등 조직적 사기 유형에는 처벌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양형위는 “현재의 사기범죄 양형기준은 2011년에 설정됐고 시행된 이후 그 권고 형량범위가 수정되지 않아 그 후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범죄양상이나 국민인식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도 지난달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증권 범죄자가 취한 부당이득액의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주가조작으로 50억 원의 범죄수익을 얻었다면 2배인 100억 원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이같은 처벌 강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동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재건 없이는 한탕주의성 사기 범죄가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A교수는 “근본적으로는 정치인·기업인과 같은 사회적 리더들이 투명하고 청렴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회적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라면서 “양형강화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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