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문에 빠진 이승만 서명…두고두고 ‘당사국 논란’[정전 70년]
정전 반대해 ‘거부’ 해석과
‘권한 없었다’ 주장 엇갈려
북, 평화협정 전환 논의서
‘당사국 자격’ 시비 근거로
한국 땅에서 발발한 전쟁에서 남측 민간인 99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국군 15만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전협정문에 한국 대통령의 서명은 담기지 못했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과 펑더화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만이 서명한 뒤 원본을 나눠 가졌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서명이 담기지 않은 이유와 한국의 정전협정 당사국 논란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전쟁 발발 직후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에 넘겼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휴전 논의에 불을 붙이자 반발하며 국군이 단독으로라도 북진해 통일하겠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상이 약 2년 만에 타결될 기미가 보이던 1953년 6월18일 새벽 이 대통령은 반공포로 2만7389명을 불시에 석방했다. 포로 교환 문제를 두고 협상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싸워온 두 진영은 또 협상을 중단해야 했다. 미국 특사에게 이 대통령은 정전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수 있었다.
이 대통령 서명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갈린다. 이 대통령이 의지에 따라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미국과 협의는 했지만 정전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서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애초에 정전협정 서명국이 될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정전협정은 개념상 교전권을 가진 대표들 사이 약속이므로 유엔군 사령관만이 서명 권한을 가진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서명하지 않은 사실은 추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논의에서 한국의 당사국 자격 논란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논의에서 당사자를 북한과 미국으로 한정하려 했다.
한·미는 이 대통령이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에서 정전협정 준수 의도를 분명히 했고, 한국은 정전협정 후속 회담인 제네바 정치회담에 당사국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점 등을 들어 맞섰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국군이 참전한 것이 명백한 만큼 정전협정의 당사국 지위는 공고하고 향후 평화협정 논의에서도 한국은 당사국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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