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승화된 휴머니즘적 본질

김민경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23. 7. 2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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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A콜렉션]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 소개
유영교, 욥, 1982, 대리석, 30×40×54cm

유영교(1946-2006)는 충북 제천에서 출생했고, 홍익대 미술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 서울의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 이탈리아로 넘어가 로마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제2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73)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유영교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두각을 드러냈으며, 유학 기간동안 세계적인 구상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Emilio Greco, 1913-1995)와 페리클레 파찌니(Pericle Fazzini, 1913-1987)로부터 사사받으며 유기적인 형태의 종교적이고 숭고한 메시지를 담은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작품'과 '내적인 의미 추구'에 작품 제작의 목적을 두고 생활 속에서의 조형성 추구와 구도자적인 삶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작품은 가족, 여인상, 종교 주제 등의 돌 조각과 움직이는 철제 조각, 물이 흐르는 자연석의 샘 조각 등으로 분류된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착을 담고 있으며, 공간과의 조화에 끊임없는 실험과 부단한 노력이 엿보인다. <욥>은 구도자적 그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정으로 거칠게 쪼아 마치 붓 자국이 강한 회화와 같은 격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돌의 감각적인 질감 표출과 볼륨의 효율적인 효과는 처절하게 울부짖는 성서 속의 욥을 통해 인간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휴머니즘적인 본질을 재료를 통해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작가의 돌조각 작업에 내포된 상징의 세계, 즉 인간성 자체의 원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해 왔던 그의 예술세계를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한정수,돌,1991, 한지에 수묵담채, 호분,129x162cm,1991

한정수(1958-1998)는 1992년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전임강사로 부임하면서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관념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 관심을 갖고 주변의 사물을 다루었다. 그의 작업실은 대전 유성구 안산동 마을회관 2층에 있었는데,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며 발견한 풀, 돌, 씨앗, 달팽이 등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동양화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고자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동양화의 전통 재료인 지필묵에 목탄을 접목시켰고, 연지벌레에서 짜내 만든 붉은 빛 물감인 양홍(洋紅)을 즐겨 사용하였다. 목탄을 손으로 비벼서 지두화(指頭畵)를 그리고, 화면 뒷면에 채색하여 안료가 은은하게 앞으로 배어나오도록 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형태와 채색에서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즉 무위(無爲)를 이루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는 1996년 1년간 중국 사회과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북경, 상해, 소주, 항주 등 전통수묵 현장을 답사하고 이 때 쓴 미술기행을 귀국 후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었으나, 1998년 암 재발로 별세하였다. 그의 유족은 작품 중 41점을 대전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는데, <돌>은 그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큰 화면에 강한 선으로 호방하게 그려진 산과 물의 기세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유근택, 어떤 경계, 2019, 한지에 먹, 호분, 템페라, 204×295cm

유근택(1965-)은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석남미술상', 200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21년 사비나 갤러리에서 열린 '시간의 피부'전까지 20여 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관념적이었던 한국화를 가깝고 친숙한 것으로 만들고자 일상의 풍경을 택해 작업해왔다. 자신의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기록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는 최근 전시에서 일상을 넘어선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며, 한국현대사의 한 장면이나, 팬데믹 속의 인간 등 작품의 소재를 확장해나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예전 작업에 비해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시기와 우리가 감내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들을 조금 더 끌어들인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경계> 연작 중 2019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황량한 풍경과 철책을 상징적으로 배치하여 정치적인 격변의 시기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으며, 분단국가에서 사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는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그림에 늘 등장하던 장난감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도 황무지 위에 드문드문 펼쳐져 있어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현실적인 사실을 담는 것에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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