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호신용품

최민영 기자 2023. 7. 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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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청 대강당에서 2018년 열린 ‘여성 안전 호신술 아카데미’에 참가한 여성들이 위기상황에 대비해 호신술을 익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신림역 주변에서 사상자 4명이 발생한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 이후 호신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22일 네이버쇼핑은 최다 검색어로 후추 스프레이, 호신용 삼단봉, 전기충격기 등이 올랐다고 집계했다.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2009년 강호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때와 마찬가지다. 충격적인 강력범죄가 터지면 보통 자기방어 본능이 호신용품에 대한 궁금증과 수요로 나타난다. 과거와 달리, 이번 사건에선 여성·노약자가 아니라 건장한 체격의 20~30대 남성들이 피해를 입으면서 남성들의 구매 문의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근래 많이 팔리는 호신용품은 캡사이신 등이 함유된 최루액을 발사하는 후추 스프레이다. 가까이 접근한 상대방 안면에 뿌린 뒤 도망할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불량일 땐 분사가 제대로 안 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100데시벨(db) 이상의 굉음을 내는 호신경보기는 주변 이목을 집중시키고 상대를 당황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홀로 처한 위급한 상황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몸이 얼어붙어 비명조차 안 나오는 경우가 적잖다. 일반인이 3단봉이나 전기충격기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범죄자를 되레 자극하거나 과잉방어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보통 시민들에게는 호신용품이 필요 없는 사회가 우선이다. 범죄 예방은 국가의 몫이지 개인이 적잖은 비용을 들여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열패감과 시기심에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백주에 대로에서 칼부림한 이번 흉기난동 사건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험 징후다. 경쟁지상주의와 양극화로 인해 주변부로 내몰려 고립된 이들은 자포자기하거나 정신건강을 잃고 있다. 개인의 불행이자 사회의 불행이다.

의료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크게 밑도는 정신보건예산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직접적인 관리체계도 필요하지만, 취약계층도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다. 약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아무리 강력한 호신용품으로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사회가 될 수 있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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