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훈육할 권리 구체 명시하고 ‘학생 책무성’도 규정 추진 [추락한 교권]

김유나 2023. 7. 2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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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강화대책 급물살
진보교육계 등 반대 부딪혀 지지부진
교사 사망 이후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교육차관 “실행력 담보 법적근거 마련”
교육감들 “학생인권조례 조속 개정”
그동안 생활지도 규정 배치… 재정비 될듯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이 화두로 떠오른 데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교권 강화 대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교권 강화 방안은 진보교육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었지만, 교권추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급변하는 상황이다.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사가 할 수 있는 생활지도’ 고시 추진

24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및 자치조례 정비 계획’을 발표하고 “교권 확립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의 장과 교원은 조언, 상담, 주의,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데,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앞서 교총은 정부에 △교실 퇴실 및 특정 공간으로 이동 △교육활동 공간(교실) 내 특정 장소로 이동 △반성문 등 과제 부과 △방과 후 별도 상담 △학부모 내교 상담 등을 명시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교총은 “교실 퇴실, 반성문 쓰기 등 구체적인 생활지도 방법을 담은 고시까지 완료돼야 학부모, 학생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예방하고 학습권 보호와 교권 보호란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학생을 훈육할 권리는 생겼지만 ‘어떻게’ 하는지 명시되지 않아 여전히 아동학대 신고의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및 자치 조례 정비 관련 긴급 브리핑을 마친 뒤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차별 금지’ 또는 ‘사생활 침해 금지’를 규정해 교사의 생활지도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몰리는 경우도 많은데, 교육부는 고시가 제정되면 이런 측면도 보완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교실은 학생이 휴대전화로 장난을 쳐 교사가 제지하면 학생이 ‘이건 사생활 침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라며 “고시에 ‘교사는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사용이 다른 학생 및 교원의 교육활동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주의를 줬음에도 불응한 경우 검사와 압수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일부 진보교육계에선 반성문, 교실 뒤에 서 있기 등의 훈육 행위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간접체벌’이라 주장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충남지부와 충남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이달 초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지역 학생 생활규정에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조항들이 상당하다. 교실 뒤 서 있기, 반성문 쓰기, 운동장 빠르게 걷기 등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학교도 많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총은 “‘하지 마라’는 타이름이 안 통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그 정도 생활지도도 못 하면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고 면학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착수

교육부는 학생의 ‘권리’만 있고 ‘책임’이 없는 학생인권조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7곳(서울·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인천)에서 공포됐는데, ‘체벌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학생 생활지도 규정과 배치된다.

학생인권조례는 진보성향 교육감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로, 그간 보수 교육계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날 대표적인 진보성향 교육감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조례 개정 의사를 밝히는 등 상당수 교육감이 조례에 책무성 조항을 넣는 식으로 개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지난 선거에서 보수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경기와 충북은 이미 개정 또는 폐지하겠다는 방안을 밝혔고, 광주·인천·전북은 개정을 검토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의한 긴급 추진 과제 제언 및 법안 신속 입법 촉구 시교육청-교직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석승하 서울특별시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박근병 서울교사노동조합 위원장, 김성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서울지부 지부장. 뉴시스
다만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은 교권이 잘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비약”이라고 조례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전했다. 조 교육감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조례 전면 재검토 의견이 나오는 것에 우려의 뜻을 밝혔다. 그는 “교육 이슈가 과도하게 정치적 쟁점이 되고 정략적 갈등의 소재가 되어버리면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미시행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장 차관은 “학생인권조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포괄적으로 명시돼 악성 민원의 근거가 된다. 교사가 잘하는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면 못 받은 아이 부모가 ‘차별했다’며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는 특정한 교육청에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부작용들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용해 전국적으로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학생 인권은 중요하다“며 “다만 학생 인권이 보호되면서도 정당한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조례 방향을 권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정부가 학생 인권만을 강조한 것을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전 정부 탓’을 한다“고 맞섰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호 존중과 보완 정신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고 했다.

김유나·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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