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서 칭찬하면 ‘차별’, 핸드폰 지적하면 ‘인권’…학생인권조례 손본다(종합)

세종=손덕호 기자 2023. 7.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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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사생활침해 금지 조항 등 학생인권조례 일부 개정 전망
중대한 교권침해 학생부 기재 방안 입법 추진
교사들 ‘악성 민원’ 혼자서 처리 않도록 민원창구 논의

교사가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되어 온 학생인권조례가 개정된다. 학생인권조례의 차별 금지나 사생활 침해 금지 조항을 이용해 학부모가 악성 민원을 넣을 수 없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8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빌딩에서 열린 교육부-교사노동조합연맹 교사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정부에서 교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당, 지자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교사노동조합연맹 간담회에서 “교육부는 학생인권만을 주장해 교원의 교육활동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더 이상 침해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지도의 범위·방식을 규정한 교육부 고시안을 8월까지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시·도 교육청과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해 지나친 학생 인권 중심으로 기울어진 교육 환경을 균형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진보 성향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재임 중일 때 경기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됐다. 서울에서는 곽노현 서울교육감·박원순 서울시장 체제였던 2012년 주민 발의로 제정됐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광주광역시·경기·전북·충남·제주 등 6곳에서 시행 중이다. 이 부총리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전면 개정하겠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다른 교육청에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 부총리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로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이 곤란하고, 학생 간 사소한 다툼 해결도 나서기 어려워지는 등 교사의 적극적 생활 지도가 크게 위축되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학생인권조례로 교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설명했다. “불법이나 위험한 물건을 가져왔다거나 휴대전화로 수업 중에 장난을 치고 있으면 선생님이 제지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 ‘이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잘하는 친구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면 못 받은 (학생의) 학부모가 ‘우리 아이를 차별했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현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오른쪽)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및 자치조례 정비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일은 학생인권조례가 추상적인 문구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학생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은 선생님들의 칭찬이나 질문을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데 활용된다”며 “사생활의 자유 조항은 정당하고 즉각적인 학생 생활지도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어 “(학생인권조례는) 아주 포괄적이지만, 현장에서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악성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7개 시·도교육청만 실시 중이지만 개정하면 전국의 학교에 변화를 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차관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8월까지 마련한다는 내용의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및 자치조례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 각각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교원의 생활지도권을 명시했고,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구체적인 생활지도 범위를 담겠다는 계획이다.

장 차관은 “조례는 법령이 정하는 틀 내에 있어야 한다”며 “학생인권조례에서 적절하지 않거나 (법의) 틀 내에서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고시에) 적극적으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고시 역시 예고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해 2학기부터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열린 시교육청-교직 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최근 발생한 초등학교 교사 사건 관련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악성 민원 폭탄’을 방지하기 위해 통합 민원창구 개설을 검토한다. 이어 국회와 협의해 중대한 교권침해에 대한 처분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추진한다. 장 차관은 “교권침해를 한 학생에 대해서 조치를 어느 선부터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되는지,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를 대통령령에 위임해서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게 정부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중대한 교권침해 사안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에 대해 올해 6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 교사의 96%, 학부모의 88%정도가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이 방안에 대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7월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사 약 8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교사의 32%가 혼자 해결하고, 19%는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장 차관은 “절반 이상이 (교권 침해를) 혼자 감내하는 상황”이라며 “악성 민원을 혼자 해결하는 게 현실이어서, 민원 창구를 마련해 조치한 다음 알려주는 방법을 교육청과 논의해 정립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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