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백재권…용산의 ‘술사’들

한겨레 2023. 7.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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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의 유튜브 강연 장면. 유튜브 갈무리

[세상읽기]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유튜버이자 종교인인 천공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다소 싱거운 방식으로 일단락되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새 대통령 관저 터에 천공이 방문했다는 폭로가 나온 이후 반년 이상 수사가 이어졌지만 목격자 증언 이외의 증거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경찰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전수조사 결과, 이 시기 새 관저 후보지였던 외교부 장관 공관과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방문한 인물은 천공이 아닌 다른 풍수가였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천공이 유튜브에서 용산의 풍수 관련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그 채널에 올라가 있는 1만개 이상 영상 속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이슈가 있기나 할까?), 그는 딱히 풍수지리 전문가는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 풍수에 따라 관저의 세부적인 입지를 정하고자 했다면, 그보다는 좀 더 해당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고 믿어지는 이의 조언을 듣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한국의 통치집단이 단일한 종교적 인물에게 “영혼을 지배”당하고 있다기보다는, 복수의 “영험한” 인물들로부터 분산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좀 더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풍수지리, 관상, 점복 등 다양한 술수들에 여전히 의지하거나, 적어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정치적 운명을 신비적인 술수를 통해 예측하거나 정당화하는 일은 특정한 세대에게는 상식의 일부다. 장년층 독자가 많은 보수 언론들에서는 지금도 풍수, 관상 관련 기사나 칼럼들이 인기리에 읽힌다. 관저 풍수를 봐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백재권 또한 <중앙일보>에 수년간 유명인들의 관상을 해석하는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지만, 그 문화적 연원은 상당히 깊다. 전근대 한국에서는 풍수지리, 관상법, 사주명리학과 같은 술수를 학습한 이들이 권력자, 또는 장래에 권력을 쥘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활발하게 접근했다는 기록이 숱하게 남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왕조 교체와 같은 기회를 잡아 건국 세력의 일부가 된 인물들도, 일시적으로 권세를 누리다가 반대파의 공격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들도 있다.

정치적 야심을 품은 술사 중에는 현재의 권세가들이 아닌 사회 불만 세력을 고객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행여나 이들 ‘반역자’들이 권력 획득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자신의 팔자가 피는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희망적인 전망을 몇가지 해주고 금전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물론 “왕이 될 상”이라고 덕담을 해준 사람이 그 말을 믿고 무장봉기를 획책하다가 역모죄를 쓰기라도 하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대의민주제와 공화정이라는 근현대의 환경은 이들에게 있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기회였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정치지망생이 양적으로 폭증했다. 누군가 황제의 사주를 가지고 있다고 선전하거나, 왕이 날 땅에 조상 묘를 이장했다는 소문이 나더라도 반역죄로 잡혀갈 일도 없어졌다. 불리해진 것은 근대적 교육의 확대와 함께 술수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 가운데 하나가 술수학을 제도권 학문의 일부로 편입시켜 ‘과학적 지식’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특수대학원 제도와 평생교육의 확대는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술수는 정치적 대표자의 선출이나 대통령실 이전과 같은 중대한 공적 의사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지식체계인가? 흥밋거리 이상으로 술수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런 전통적인 테크닉들이 현대 과학이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에 지혜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필자 또한 오늘날 우리의 지식에는 여전히 빈틈이 많이 있으며, 세상에는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과학적 방법으로 구축된 인류의 지식체계가 아직 해명하지 못한 세계를 자신들만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지는 못하겠다.

의사결정권자의 책무는 결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풍수전문가’를 중용하는 세계관 속에 사는 정치인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여론, 과학, 정책, 예산 같은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 쪽에 귀 기울이는 통치자를 가지는 편이 시민 입장에서는 훨씬 행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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