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면 바다에 버려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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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더운 날이다.
그늘을 찾아 차를 세운다.
저쪽 땡볕에 차 한대가 서 있다.
"시동 좀 꺼주시겠어요? 저쪽 그늘에 차를 세우시면 견딜 만합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차를 몰고 그늘로 들어가 시동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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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한국사회][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무척 더운 날이다. 그늘을 찾아 차를 세운다. 아이가 나오려면 30분쯤 남았다. 저쪽 땡볕에 차 한대가 서 있다. 시동을 켠 채 창을 꽁꽁 닫아놓았다. 덩치 커다란 운전자가 휴대폰 삼매에 빠져 있다. 용기를 내 창문을 두드린다, 똑똑. 화들짝 놀란 그가 창을 내린다. “시동 좀 꺼주시겠어요? 저쪽 그늘에 차를 세우시면 견딜 만합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차를 몰고 그늘로 들어가 시동을 끈다.
캐나다는 3분 이상 공회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엄하게 단속하지는 않지만 규정이니 잘 따르고, 지적해도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가 3분 아니라 30분간 공회전한다면 당장 내 건강에 위험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배기가스 속에는 수많은 유독물질과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내 흩어져 어마어마한 부피의 대기 속에 희석되므로 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량이 공회전 때보다 훨씬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전세계 수많은 도로를 몇시간씩 질주한다. 수십년간 그렇게 해왔지만 인류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늘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공회전할 권리가 있을까? 내가 그를 편들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과학적이라고, 미신에 빠졌다고 비웃어야 할까?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기로 했다. 위험성이 매우 낮다는 데 동의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방사성 핵종의 위험 수준과 희석 효과, 해류 등을 고려하면 해양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찜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학적’ 결론이라면 이성의 힘으로 일차적 정서반응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 그런데 방출되는 총 방사능을 전세계 바닷물의 총 부피로 나누어 연간 피폭량을 계산하는 정도가 정말 최선의 과학인가?
계산에서 빠진 것이 있다. 규모와 현실이다. 자동차가 처음 개발됐을 때 언젠가 배기가스가 대기에 축적돼 지구의 온도를 올릴 수 있다고, 그로 인해 기후재앙이 닥쳐 매년 수백만이 죽을 거라고 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플라스틱 물병이나 비닐봉지가 개발됐을 때 언젠가 그 쓰레기가 태평양 한가운데 모여 남한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섬’을 이룰 수 있다고, 그로 인해 심해 생물의 몸과 신생아의 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돼 건강을 위협할 거라고 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이 규모다.
물론 후쿠시마는 일회적 사건이다. 그러나 원전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이며, 앞으로 1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폭우, 폭설, 폭풍, 폭염, 한파, 지진이 수시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수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앞으로 더 많이 건설될 중국 동해안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 후쿠시마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과학도 그렇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나며, 우리가 아는 것은 진실의 근삿값에 불과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의학도 그렇다. 수년간 수천억원을 들여 수천명에게 시험한 신약이 출시된 뒤 치명적인 부작용을 나타낸 일은 비일비재하다. 과학의 이름으로 남의 무지를 꾸짖고 싶은 유혹이 들 때는 먼저 자신이 충분히 아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 여당이 앞장서 오염수 해양 방출의 안전성을 옹호하는 것은 이상하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일본 입장을 이해한다 해도 그건 일본 정부가 할 일 아닌가? 나는 이번 일이 나쁜 선례가 되어 방사성 물질을 해양에 투기하는 것이 일상이 될까 봐 두렵다. 인류가 기후와 환경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고 멸종을 향해 치닫는 것은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편리를 좇는 태도가 일상이 된 탓 아닌가? 눈앞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자국 타국 가리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동북아, 아니 세계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큰 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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