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엘리엇 소송, 검사와 법무장관의 차이

2023. 7.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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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엘리엇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국제투자중재재판(ISD)에서 잇달아 승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사 시절 론스타·엘리엇 관련 국내사건을 담당해 유죄를 받아낸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두 판결 모두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할 뜻까지 밝혔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정부 이미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 국익에는 반한다.

ISD는 단심제가 원칙이어서 취소소송은 특별한 형식적 하자가 있을 경우만 허용된다. 판결을 내린 판정부 구성의 하자 및 월권행위, 이유 없이 결론이 내려진 경우, 재판관할권의 하자 등을 다투는 절차다. 법무부가 내세운 취소소송 사유는 관할권의 하자다. 삼성물산의 소수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법상 소수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인데,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압박한 것이 외국인투자에 대한 '정부조치'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조치 자체가 없었는데도, 정부를 상대로한 ISD 제소를 재판부가 인용한 것은 재판관할권의 하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할권 문제와 실체의무 위반 문제를 혼동하는 논리다. 당시 복지부장관까지 개입해 국민연금이 일정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토록 압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한 것이 맞다. 국가책임에 관한 국제법상의 원칙은 국가기관의 직접행위는 물론이고 민간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해 일정한 행위를 하게 유도한 것도 국가의 행위로 귀속된다고 본다. ISD는 국가책임을 묻는 제도라서 국제법상의 원칙이 중요한 것이지 국내 상법상의 원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상법상의 원칙은 정부조치가 국제적 최소기준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해결방안의 핵심은 취소소송 제기가 아니다. ISD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핵심이다. 2011년 한미FTA의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ISD에 대한 반대여론이 대두되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ISD의 폐기, 유보 또는 수정 결의안이 채택됐다. 당시 정부는 ISD 재협의를 약속하고, 민관전문가작업반을 운영해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이 보고서 작성 시 ISD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날카로운 전문가 의견이 정식으로 제기된 바가 있다. ISD를 제기할 수 있는 외국 투자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점도 제기됐다. 이런 사항들은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ISD의 긍정적인 측면 위주로 기술되어 대중의 관심 밖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최근 벌어진 론스타와 엘리엇 사태는 이러한 ISD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두고, 한-벨기에간의 투자보장협정상의 ISD를 활용해 승소한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보유한 소수지분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로 인해 가치하락을 입었다는 것이 제소 사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외국계 페이퍼컴퍼니와 소수주주들이 우리 정부의 공공규제를 상대로 ISD를 제기해올까.

정부가 이미 패소한 ISD 판정을 두고 억지로 취소소송까지 제기하며 국민적 관심을 또다시 돌려버리고 시간을 소비할 일이 아니다. 우리 정부의 패소가 빨리 확정돼야, 다국적 투기자본이 무분별하게 공공규제를 ISD로 제소해오는 사태를 견제할 수 있도록 현행 투자협정들을 개정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다. 한미FTA도 개정해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최소기준대우 의무의 적용범위에서 제외시키는 조항도 넣을 수 있다. 앞으로 맺을 협정의 협상에도 반영할 수 있다.

법무부는 지금 외국계 투기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국익에 반해 그 횡포 시기를 연장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검사와 법무부장관은 이 문제를 보는 시각부터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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