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人문화] 영화·뮤지컬 잔뼈 굵은 40여년… "젊은 예술가들 꿈 위해 심부름하죠"
故이태원 대표와 수많은 작품 참여
배우 조승우 만나 매니저의 길로
뮤지컬 배우 발굴 탁월한 안목
첫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제작
돌아가신 어머니 빈자리 채워줘
"좋아하는 일 한다는건 행운"
배우 매니지먼트업계 '代母'… 송혜선 PL엔터테인먼트 대표
"늘 새로운 문제가 새록새록 터지며 힘들지 않은 적이 드물었지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진 않았어요. 위기마다 잘 극복해 더 좋은 날이 왔으니까요."
송혜선(62·사진) PL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스무 살에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20여년을 일하다 배우 조승우의 매니지먼트를 계기로 이후 20년가량을 뮤지컬과 함께 하고 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직접 운전해 소속 배우의 출퇴근을 돕고,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까지 고민도 공유한다. 업계에서는 배우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창작진·스태프 모두 살뜰히 챙기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꿰뚫고,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건 송 대표의 숱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그는 첫 사회생활을 경기도 극장협회에서 시작했다. 당시 협회장을 맡고 있던 고(故) 이태원 전 태흥영화사 대표가 강원 춘천 육림극장과 손잡고 영화배급을 하면서 송 대표는 육림영화사로 옮겨 일을 배웠다. 이태원 전 대표는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한 이후에도 송 대표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곳에서 '장군의 아들' '태백산맥' '서편제' '춘향뎐'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비롯해 2004년 '하류인생'까지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영화 제작에 뜻을 두고 있던 송 대표가 배우 매니지먼트에 집중하게 된 데는 조승우의 영향이 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난 송 대표는 길고도 긴 그의 영화·뮤지컬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놨다.
"1999년에 오디션으로 조승우를 만나 이듬해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에 갔어요. 막연히 마흔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있어 '춘향뎐'까지만 하고 사표를 냈죠. 그리고 사무실을 냈는데 관리하던 조승우·오정해 배우와 함께 나와 태흥영화사의 외주 매니지먼트 일을 하게 됐어요. 영화 제작을 하려면 당장 돈이 있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내린 결정이었어요."
송 대표는 쉼 없이 일하던 당시 영화 시장이 급격히 커져 변화가 많은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 일은 한계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조승우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흥행에 성공하고, 이어 영화 '말아톤' '타짜'까지 잘되면서 매니저를 본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내 인생에서 조승우 같은 배우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영화와 뮤지컬의 경계를 무너뜨려 매니지먼트 일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엔 뮤지컬을 잘 하는 배우들을 영화계로 데려와야겠단 생각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다들 공연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어 영화를 할 시간이 없더라"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조승우의 뮤지컬을 빠짐없이 관람하다 보니 다른 배우들이 눈에 들어와 김선영, 윤공주를 영입했다. 홍광호는 조승우의 추천으로 함께 하게 됐고, 그가 영국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뮤지컬 25주년 기념 공연에 주인공으로 오르는 영광도 같이 누렸다. 지난 2019년 첫 번째 제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으로 관객과 만난 양희준·김수하 역시 송 대표의 안목을 입증한 배우들이다.
송 대표는 10년간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실감과 상처가 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친구 추천으로 서울예대 학생들이 만든 '외쳐, 조선'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주연을 맡은 양희준의 미소가 예뻤고, 90년대생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며 "처음엔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창작진과 양희준을 만난 뒤 바로 제작 결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돼 가족들이 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 와중에 뮤지컬 제작이란 걸 한다고 하니 다들 말렸죠. 하지만 어느날 보니 제가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스웨그에이지'는 어머니 빈자리를 채워준 작품이에요."
'스웨그에이지'는 2019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 막을 올린 뒤 2020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앙코르 공연, 2021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연을 했다. 앙코르 공연과 재연은 코로나19 확산기 속에서도 이어갔다.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을 위해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송 대표는 "제작사와 스태프, 배우, 관객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현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삼연 중인 '스웨그에이지'에는 '잔칫날'이라는 특별 공연이 포함돼 있다. 출연 배우 모두가 무대에 올라 같은 역할의 배우들이 하나의 노래를 나눠 부르거나 함께 부르는 모습이 실현된다. 뿐만 아니라 PL엔터테인먼트 소속 유명 배우들이 깜짝 게스트로 출연해 극중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만든다.
이는 송 대표의 페스티벌 제작 경험에서 나온 발상이다. 송 대표는 2016년부터 3년간 자라섬 뮤지컬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태풍과 장마 등 날씨 변수에 대비하고, 소속 배우 외에 수많은 배우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등 신경 쓸 게 한두개가 아니었지만 3회 모두 무사히 치렀다.
송 대표는 지난해에는 고독사를 다룬 창작 뮤지컬 '어차피 혼자'를 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같이 작업했던 배우 강수연이 그해 떠났고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며 "이 작품 시작 직전 막내 고모가 고독사를 하셨다. 고독사는 나한테 앞으로 올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얘기가 작품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송 대표는 인터뷰 중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행운인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배우들과 서로 믿는 건 기본이죠. 작품 방향을 같이 의논하지만 최종 결정은 배우가 해요.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배우가 선택하는 걸 우선으로 해주고 싶어요. 제 직업은 젊은 예술가들의 꿈을 위해 심부름하는 거예요."
그는 "이번 '스웨그에이지' 오디션에 전국 곳곳에서 1800명이 지원했다"며 "이 작품을 하면서 신인배우를 발굴하고 자립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이걸로 데뷔를 많이 해서 좋은 작품, 좋은 회사에 뽑혀가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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