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 묘지 1700기에 맺힌 사연…‘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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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에 묘지 약 1700기가 흩어져 있었다.
묘역 아래쪽에 있는 비석에는 '장흥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이라고 쓰여 있고 비석 뒤편에는 '1989년 공설운동장을 만들면서 장흥읍 충열리에 있던 묘지 1699기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대부분 동학농민군의 무덤으로 전한다. 현장 보존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옮겼지만 국내 동학군 묘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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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에 묘지 약 1700기가 흩어져 있었다. 묘지 주변에는 갓 벌초한 듯 베어낸 풀들이 널려 있었다. 묘역 사이에 ‘무연분묘위령’이라고 써진 비석이 놓여 있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이다.
지난 20일 찾은 전남 장흥군의 장흥공설공원묘지 4묘역(6200㎡). 1894년 장흥 일대에서 숨진 동학농민군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묘역 아래쪽에 있는 비석에는 ‘장흥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이라고 쓰여 있고 비석 뒤편에는 ‘1989년 공설운동장을 만들면서 장흥읍 충열리에 있던 묘지 1699기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대부분 동학농민군의 무덤으로 전한다. 현장 보존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옮겼지만 국내 동학군 묘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소속이나 사망 경위, 안장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동학연구자들은 1894년 6월부터 12월까지 순천, 광양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영호도회소 소속 농민군 일부가 일본군에 밀려 동학혁명 최대·최후 전투인 석대들 전투가 벌어진 장흥에서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관산읍 남송리, 자울재 등에 있는 무연고 묘지도 석대들 전투에 이어 관산읍 옥산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이 묻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등을 보면 영호도회소는 전북 김제 출신 김인배(1870~1894)가 1894년 6월 동학지도자 김개남에 의해 순천 지방 동학 대접주(지도자)로 파견돼 조직했다. 같은 해 5월 전주화약을 맺은 직후다. 농민자치기구 집강소를 설치한 전남 순천을 근거지로 광양·여수·낙안과 영남 일부(하동·진주)를 동학 세력권에 넣어 남부 지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후방 방어, 군수물자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관군의 기록인 <순무선봉진등록>에는 영호도회소 규모가 10만명이라고 나와 있다.
같은 해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며 2차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영호도회소는 광양에서 섬진강을 건너 경남 하동에 진출했고 10월 진주까지 무혈입성했다. 하지만 좌수영군이 있던 여수에서 일본군의 참전으로 패퇴하며 힘을 잃었고 다시 광양으로 밀렸다. 12월7일 김인배는 처남에게 “장부가 사지에서 죽음을 얻는 것이 오직 떳떳한 일이요. 다만 뜻을 이루지 못함이 한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붙잡혀 참수형을 당했다. 이때 살아남은 영호도회소 동학군은 순천, 보성을 거쳐 장흥으로 모여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잊힌 역사였던 영호도회소는 이달 7일 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순천대학교에서 기념식이 열리며 처음으로 조명됐다. 하지만 사적지 정비, 참여자 발굴 등은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인배가 처형당했던 옛 광양 객사 터는 동학 사적지를 알리는 안내판 등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동학군 3천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진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나루터 또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누리집을 제외하면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광양시는 2026년까지 ‘광양읍성길 경관 광장 조성사업’을 진행하며 동학 관련 내용을 포함할지를 논의하고 있을 뿐 전남 지역을 아우르는 동학기념사업은 전무하다.
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는 내년 동학 130주년을 맞아 영호도회소의 배경과 역할, 전개를 파악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김명재 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소 기념사업회 국장은 “영호도회소는 지역별 활동은 연구된 적이 있으나 영호남 전체 지역을 조명한 연구는 그동안 진행되지 않았다”며 “전남도 차원에서 동학 사적지를 정비하는 한편 참여자를 발굴해 후손을 찾아 동학 정신을 알리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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