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출신, 주요 부처 장차관·외청장 싹쓸이] 모피아 부활?…尹 집권 2년 차에 더 커진 기재부 파워 인맥

전준범 조선비즈 기자 2023. 7. 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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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최상목 경제수석, 김대기 비서실장이 3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사진 뉴스1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2년 차를 맞아 개각을 단행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출신 관료를 중용하는 추세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기재부 출신 인사는 지난해 윤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 곳곳에 진출했다. 7월 6일 실시한 차관급 정무직 인선에서도 임명된 사람의 절반가량이 기재부 관료로 채워졌다. 주요 부처 장차관 자리를 기재부 출신이 꿰찼던 박근혜 정부 후반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기재부는 특정 부처나 지역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거시적 관점에서 나라 살림을 책임져야 한다. 이런 조직 특성 덕에 기재부 공무원은 저연차 때부터 실무와 기획, 정무 능력을 고루 쌓을 기회를 잡는다. 여기에 예산 확보가 중요한 지방 정부에 기재부 출신은 전략적으로도 필요한 인재라는 인식이 있다. 다만 일각에선 요직에 기재부 관료가 너무 많아지면 국정을 경제 논리로 운영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7월 6일 정무직 차관급 6명과 대통령 특별보좌관 1명 등 총 7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정무직 차관급 6명 중 고광효 관세청장, 김윤상 조달청장, 이형일 통계청장 등 3명은 기재부 출신이다. 기재부에서 고 청장은 세제실장, 김 청장은 재정관리관, 이 청장은 차관보로 각각 근무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정권 출범 직후에도 4대 외청 중 국세청을 제외한 3곳(관세청·조달청·통계청)의 수장을 기재부 출신으로 채운 바 있다. 기재부보다는 검사나 정치인, 학자 등을 외청장으로 선호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현 정부 들어 기재부 선배들이 연거푸 외청장을 맡은 덕에 후배들도 행복해졌다. 1급 간부가 진로를 보장받아 나가면 그 아래 국장급 공무원도 승진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기재부의 고질적인 인사 적체도 일부 완화할 수 있다.

올해 6월 29일 단행된 첫 번째 장차관급 인선에서도 기재부 출신 인사 발탁은 눈에 띄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한훈 통계청장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을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각각 임명했다. 전체 개각 규모에 비해선 적은 숫자였으나 두 사람의 주요 이력이 농식품부·해수부와 밀접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재부 출신 중용이란 말이 나왔다.

이런 장면은 작년 5월 윤 정부가 출범한 이래 반복해서 등장했다. 정권 ‘투톱’ 격인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기재부 출신이다. 한덕수 총리는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고, 김대기 비서실장은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을 역임했다. 총리실 이인자로 장관급인 방문규 국무조정실장도 기재부 차관 출신이다. 윤 정부 경제팀 핵심 라인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상목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정부 부처 요직 상황도 비슷하다. 기재부 재정관리관 출신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5월 복지부 1차관에 임명되고 불과 5개월 만에 복지부 장관으로 초고속 영전했다. ‘역도 영웅’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전임자인 조용만 전 차관도 기재부에서 기조실장까지 지낸 정통 경제 관료다.

이 밖에 고광효 관세청장의 전임자인 윤태식 전 청장, 김윤상 조달청장의 전임자인 이종욱 전 청장을 비롯해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조정실장, 강완구 국방부 기조실장, 김병환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김병규 경남도 경제부지사, 이종화 대구시 경제부시장 등도 기재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다.

기재부 출신 인사가 중앙 부처와 지방 정부 요직에 두루 진출하는 일은 과거 정권에서도 많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3월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신청사에서 열린 입주 기념 현판식에 참석해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 뉴스1

“개인 역량 좋고, 모든 사안 큰 틀에서 봐”

사실 기재부 출신이 정부 부처 고위 관료로 넓게 퍼져 나가는 게 윤 정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도 기재부 출신을 중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다. 기재부 1차관 출신인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차관보 출신인 강호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있다.

또 기재부 2차관까지 지낸 이석준 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방문규 현 국무조정실장과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도 기재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복지부 차관과 미래부 1차관을 지냈다.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최경환 부총리 등 당시 정권 실세 상당수가 부지런하고 유능한 기재부 출신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정부가 기재부 출신을 중용하는 것은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재부란 조직 특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기재부는 특정 부처나 지역 논리에서 벗어나 모든 사안을 큰 틀에서 바라보며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기재부 공무원이 실무와 기획, 정무 등의 영역에서 고루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여기에 예산 확보가 매우 중요한 지방 정부에서도 기재부 출신이 주목받고 있다.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경제부시장이나 경제부지사 상당수가 기재부 출신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모든 정부 조직이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데, 기재부를 상대하는 사람이 같은 기재부 출신이면 논의가 아무래도 한결 수월해진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 관료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중용됐다. 2014년 7월 17일 최경환(오른쪽)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석준 기재부 2차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경제 논리로 국정 운영” 우려 시각도

타 부처 소속 공무원 눈에는 ‘기재부 전성시대’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인선만 놓고 보면 기재부 관료를 차관으로 맞은 농식품부와 해수부 직원의 반응이 그렇다. 한 해수부 공무원은 “장관은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차관이 다른 부처에서 오면 아무리 유능한 분이라도 불편한 감정이 든다”며 “내부 승진하는 케이스가 많이 나와야 후배들도 목표를 세우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관가에서는 “모피아가 정권 핵심 보직을 싹쓸이한다”는 말이 종종 돈다. 모피아(MoFia)는 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를 합성한 단어다.

정부 요직 곳곳에 기재부 출신이 포진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경제 논리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지난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로 많은 국민이 힘들어할 때도 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며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민생이 힘든 시점에 굳이 건전 재정이란 키워드를 끄집어냈어야 하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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