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연의 아틀리에 산책 | 곽훈 작가] 여든에 떠난 고래 사냥 ‘할라잇’…동서양 아우르는 화풍 극찬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 2023. 7. 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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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포토그래퍼 남아현

경기도 이천 일생로. 60년 가까이 그림에 일생을 바친 곽훈 작가의 아틀리에가 바로 이곳에 있다고 했다. 그의 아틀리에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목적지에 다 왔다’는 소릴 듣고 차에서 내렸지만, 아틀리에는 보이지 않고 앞에는 두 갈래 길만 나 있을 뿐이었다.

자동차가 지날 만한 너비의 흙길 하나와 아담한 오솔길 하나. 어느 쪽으로 가야 곽훈 작가를 만날 수 있을까. 내비게이션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감을 믿고 한쪽 길을 선택해서 따라갈 뿐이었다. 이 길로 가면 나오겠거니, 낙관하면서.

1941년생, 82세 곽훈 작가의 인생이 그랬다. 한국에서 미술 교사를 하다가 대책 없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오히려 작가의 길이 풀렸다. 한국에선 제대로 된 화랑도 없던 시절, 미국에서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일까. 최초로 한국관이 마련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 네 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면서 미국을 건너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곽훈 작가는 스스로를 ‘청년 작가’라고 칭했다. 선생님이라거나 대가라는 표현엔 손사래를 쳤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셈이죠.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더 가야 하지 않겠어요? 계속 가야죠.” 60년 넘게 그림·미술·예술과 함께해 온 청년 작가 곽훈은 어떤 길을 가려는 걸까.

1 곽훈 작가의 아틀리에는 최근 푸른빛 물감으로 가득하다. 그의 최신 연작 ‘할라잇’이 고래잡이를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2 아틀리에에 가득한 작품. 사진 포토그래퍼 남아현

60년 넘는 삶을 그림과 동반하고 있다. 원동력과 아이디어 원천이 궁금하다.
“운명일 뿐이다. 원동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예술가는 그냥 운명적인 거로 생각한다. 그림이 ‘나’고, 작업은 ‘팔자’다. 아이디어는 가만히 있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 상상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머리가 하얗게 멍할 때, 아무런 감정이 없을 때 아이디어가 미어터진다. 아이디어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정리를 한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집사람은 할 일이 없는 줄 알고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아이디어의 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림 소재가 다채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그림을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많이 그린다고 한다. 그림이 맨날 바뀐다, 그런 걸 보면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다라고도 말한다. 그게 아니다. 고목나무는 꽃을 한 가지만 피우는데, 고목나무처럼 평생을 일관되게 가는 작가가 있겠지.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날마다 요일마다 꽃을 바꿔서 피워야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나는 항상 불안하고 바쁘다. 대신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산다. 그 과정에서 나는 변화무쌍하게 바뀌는데, 난 이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소재가 다양하다고 해서 곽훈이란 작가가 만든 그림 DNA가 달라지나. 내가 떡을 만들건, 면을 만들건 다 내 작품 아닌가.”

최근엔 고래를 담은 ‘할라잇(Halaayt)’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도기, 흙,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기(氣)’ ‘겁(劫)’ ‘다완(tea bowl)’ 시리즈를 발표했다. 가장 최근 것은 ‘할라잇’ 시리즈다. 고래를 1년 넘게 스케치한 끝에 이제 선보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마주쳤던 고래 뼈 그리고 울산 반구대암각화에서 받은 영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난 살아있는 고래를 본 적이 없다. 죽은 고래, 고래 뼈, 암각화만 보고 고래를 그리려니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드로잉만 몇백 점을 했다. 고대 이누이트족의 ‘고래 사냥’ 의식을 기반으로 인간이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고래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표현했다. 연작 시리즈에 붙인 이름인 할라잇을 찾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라잇은 이누이트어(語)로 ‘신의 강림’ 또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케이옥션에 따르면, 곽훈 작가가 종이에 아크릴로 그린 작은 할라잇 작품(2019년)이 850만원에 낙찰됐다. 추정가는 700만~1500만원이었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100호 할라잇 그림(2020년)의 낙찰가는 7000만원이었다.

할라잇 시리즈를 하면서 가장 마음속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미국 롱비치의 한 화랑에서 할라잇을 보고 말하더라. ‘훈, 고래잡이 그림을 보니 그냥 딱 너다. 배를 타고 협곡을 가다가 귀퉁이에 다다르면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작가의 모습이 여기 그림에 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진짜 그랬다. 내일 내가 어떻게 무엇을 그릴지 나 자신도 모른다. 기자들도 당장 내일 뭐 쓸지 지금 모르지 않나. 내 인생이 그랬고 우리 인생이 그렇다. 내일은 모르지만 하나는 안다. 행복은 일이 많은 것이란 걸.”

교사를 하다가 미국에는 왜 넘어가게 됐고, 어떻게 작가로 데뷔하게 됐나.
“한국은 화가로서 판이 없어 답답했다. 그때 사실 한국에 제대로 된 화랑이나 있었겠나. 답답해서 미국으로 갔는데 2차 오일쇼크 날 때라 세상은 뒤숭숭했다. 집엔 신생아(아들)가 막 태어나 울고 있었고. 솔직히 막막했다. 하지만 좌절은 안 했다. 난 낙관적이니까. 미국에서 광고 회사에 입사해서 아는 말은 알아듣고 모르는 말은 못 알아들으면서 일했다. 미국 생활을 한 지 만 4년 만에 2만달러(약 2600만원)를 모았다. 앞만 보며 꿈꾸며 살던 시절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꿈을 접을 수도 있었을 텐데.
“휴가를 받으면 늘 뉴욕에 포트폴리오 가방을 들고 갔다. 모은 돈으로 대학원에 등록했다. 그때 내 작품을 그 대학원의 미국 교수가 600달러(약 78만원)엔가 사 갔다. 그때 나는 미국은 그림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었다. 광고 회사에서 상업 디자이너(커머셜 아티스트)로 일하던 감각에다가 미학적인 걸 넣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던 것을 그렸다. 돈이 없어 물감을 살 수 없으니 단색으로 그렸다. 그래도 호평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길이 생각보다 잘 풀렸다. 꿈같은 출발을 한 셈이다.”

‘기’ ‘겁’ ‘다완’ 등 여러 시리즈를 선보였다. 거기에 동양 사상을 적재적소로 활용했는데, 미국 애호가(컬렉터)들이 잘 받아들였나 보다.
“서양 사람이 오히려 동양 철학을 이론적으로 잘 정립해서 이해하고 있다. 다완 시리즈는 짧은 영어로 설명하기도 쉬웠다. 소재 중 도자(陶瓷)에 대한 설명도 깔끔했다. 도자엔 수·목·금·화·토 오행이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하면 잘 이해하더라. 흙에 물을 섞어 반죽해 불에 달궈지는 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나. 일본에선 다도(茶道)를 얘기할 때 찻잔이 완벽한 미학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미국 사람은 이런 동양 사상을 두루 이해했다. 동양 사상을 서양의 회화라는 틀에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미국 시장에 안착한 비결이다. 운도 좋았지만 뿌리를 잃지 않았다.”

앞으로 계획은.
“이만큼 왔는데 계속 갈 것뿐, 다른 계획은 없다. 멀리 가려면 힘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해서 요즘엔 작업 시간을 좀 줄였다. 남들은 나를 보고 거장이라고 하는데 아직 나는 청년 작가일 뿐이고 이제 다시 또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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