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중사 유족 "특검법 만든 국회, '전익수 방지법' 만들어야"
[인터뷰] 이예람 아버지 이주완씨 "잘못은 있으나 법이 없어 처벌 못해? 법 만드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 한패"
법원 "하급 군검사에 위력행사 전익수, 부적절했지만 무죄"…재판부도 "처벌 못해 무거운 마음"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군사법원에서는 그렇게 했냐', '군검사들은 그렇게 했냐'라고 재판장이 화를 냈어요. 제가 보기에도 공군이 바보놀이한 것 같더라고요. 예람이 수사를 맡은 사람들, 증인이라고 나온 사람들도 한패같이 행동하고. 재판부도 공군과 국방부가 부실수사한 거 알게 됐어요. 재판장께서 공판 끝나면 항상 유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냐고 물어봤는데, 우리를 배려해준다고 느꼈어요.”(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다 성추행 피해사실을 신고한 뒤 지난 2021년 5월21일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하는 안미영 특별검사팀은 공군과 국방부의 사건 은폐와 부실수사를 밝혀냈다. 특검은 2차 가해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재판부는 공판 과정에서 군의 부실수사를 확인해갔다. 그러나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군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를 받는 전직 공군 법무실장 전익수씨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는 지난달 29일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미디어오늘을 만난 아버지 이씨는 “위력에 의해 하급 수사관에 압력을 넣었는데도 법이 없다는 이유로 (전씨가) 무죄를 받았다”며 “여야 이념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군인들을 위해 특검법을 만든 것처럼 국회가 '전익수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지법 얘기까지 나오는 전익수는 누구?
전씨는 공군 성추행 부실수사 의혹을 받았던 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중사가 지난 2021년 3월 선임 부사관 장동훈 중사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신고했지만 81일간 조직 내에서 고립됐고, 결국 5월 부대 내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사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이 사실이 알려졌고 국방부 장관 명령으로 수사는 공군본부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돼 가해자 장 중사를 비롯한 15명이 기소됐다. 그럼에도 재수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출범한 안미영 특검은 8명을 기소했다.
판결문을 보면 전씨는 국방부 검찰단이 자신에 대해 직무유기 등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공개 정보를 군무원 양홍승씨(1심 징역2년 집행유예 3년)와 양씨의 변호인으로부터 얻어냈다. 또 국방부 검찰단 소속 군검사에게 직접 전화해 자신과 관련한 수사내용을 물었다. 군검사가 수사진행 중인 사항으로 답변이 어렵다고 했지만 '내가 지시한 사실이 없는데 지시한 걸로 돼 있느냐', '그런 식으로 적시가 돼 있다면 사실이 아니다', '뭘 근거로 내가 지시했다고 근거로 삼았는지' 등을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묻거나 반박했다.
특검은 전씨가 수사·재판과 관련해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면담강요죄로 전씨를 기소했고,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특가법 제5조에 따르면,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원, 면담강요죄 '신고자 보호' 조항
하급자 군검사에 위력 행사 땐 적용 안돼
재판부는 “공군 법무실장으로서 군대 내 수사 경험이 많은 장성급 장교인 전씨가 수사검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해 수사의 밀행성이 요구되는 구속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내용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이고 부적절한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특가법 제5조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범죄 신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된 조항”이라며 “전씨가 위력을 행사한 상대는 '군검사'로 특가법 규정상 범행 객체에 포함될 수 없으므로 (전씨를) 면담강요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수사 중인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위력을 행사한 전씨의 범행은 특가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특검에서 적용한 제5조가 전씨의 부적절한 행동에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례적으로 재판부는 법조항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지만 전씨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법원이 전씨에 대해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아 위와 같은 행동이 형사 법적으로 정당화되고 그 결과 향후 이와 유사한 행동이 군 내에서 다시 반복돼 이 사건 이후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군 사법기관 등의 노력에 이 판결이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이에 대해 아버지 이씨는 “잘못을 했는데 처벌할 법이 없어 무죄를 줄 수밖에 없다는 재판장의 무언의 항의와 비판을 담은 판결문을 보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예람이 분노를 대신해 목놓아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전익수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청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법을 만들고 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한패”라며 “법을 이용할 본인들에게 불리한 법은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만들지 않고 본인에게 불리한 법은 모른체하면 전씨 같이 죄가 있는 자들에게 '잘못은 있으나 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한다'라면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법의 구멍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사례가 드러난 이상 국회에서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다.
이씨는 딸의 시신을 본 이후 수염을 자르지 않고 있고, 현재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전씨 처벌 등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한 장례도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에서 장례를 종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씨 등의 1심 선고 이후) 얼마 전에도 안 그래도 전화와서 장례 얘기를 하길래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따졌다”고 했다.
변호사단체도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지난 4일 성명서에서 “저연차 군검사에게 위력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자를 형사법적으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입법의 불비 현실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국회가 위력행사 대상이 되기 쉬운 군검사를 필두로 한 청년 법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법적 보호조치를 신설하는 입법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 이씨는 일단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 측과 '전익수 방지법'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권은희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 외에도 다수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익수 방지법'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군 수사·사법시스템 개혁 필요해
아버지 이씨는 전씨 무죄 선고에서도 드러나듯 군의 사법시스템에 군 수뇌부에 특혜를 주고 있어 군이 인권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육해공과 해병대까지 4곳에 모두 군인권보호관을 두고 수사인력들을 붙이면 지금처럼 사망사건 등 문제가 터졌을 때 지휘관들이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를 괴롭히는 필요가 없다”며 “지금은 지휘관들이 책임져야 하니까 압력을 넣는데 군인권보호관을 두는 게 지휘관들이 직접 책임지지 않으니 그들에게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 중사 사망으로 군 사법체계 개혁이 일부 실현됐다. 지난 2021년 6월7일 당시 대통령이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는 체계를 만들라”라며 “국회가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군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1심 군사재판을 담당하는 군사법원을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하고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민간법원에서 항소심을 담당하게 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지난해 7월1일부로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됐고 성범죄 등 일부 군범죄는 처음부터 민간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다.
이씨는 군의 수사·사법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아있는 1심 군사법원도 폐지해야하고, 고등군사법원은 폐지됐지만 고등법원에 공판군검사를 따라가도록하는 제도도 완전히 없애 민간법원으로 이관해야 한다”며 “군에는 군경찰만 남겨 사건발생시 현장을 보존하고 가해자를 구치소에 넣어 분리시키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특검은 전씨에 대한 무죄 판결에 불복해 지난 4일 항소했다.
전씨는 "제가 군검사와 전화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지만 군검사에게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전씨는 "유족은 내가 해당 사건을 은폐, 무마한 것처럼 계속 의혹을 제기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오히려 국방부 검찰단은 나를 상대로 군사법원법과 공수처법을 위반해 위법한 수사를 진행했다. 정상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면 현역 신분인 내가 왜 굳이 내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겠느냐"고 말했다.
[기사 수정 : 7월 26일 11시 / 미디어오늘은 고 이예람 중사 유족 인터뷰를 통해 전직 공군 법무실장 전익수씨가 무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한 유족의 입장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전익수씨는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 및 반론을 요청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항소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 쟁점에 관해 양측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판단해 전씨의 요청 내용 일부를 추가로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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