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 폴란드

2023. 7. 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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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1일 아침 폴란드 바르샤바. 국영 라디오 방송에선 프레데리크 쇼팽이 작곡한 '녹턴'이 흘러나왔다. 연주자는 유대계 출신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그는 공연장을 오가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평범한 예술가였다.

평화로운 금요일의 일상은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산산조각 난다.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범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연주를 마치지 못하고 피난길에 오른 슈필만은 이후 가족들 모두가 인종주의의 잔혹한 희생양이 되는 잿빛 현실을 마주한다.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슈필만은 자유 진영이 승리를 쟁취한 1945년, 다시 개국한 국영 라디오 방송의 첫 게스트로 초대돼 쇼팽의 녹턴을 마침내 종연(終演)할 수 있었다.

지난 12일 폴란드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현지 한인 동포들의 간담회 만찬 자리에서는 한인 여성과 결혼한 폴란드인 남성이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다. 대한민국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회의 참석차 폴란드에 미리 건너가 있던 찰나, 현지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문득 슈필만의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더욱 경건해졌다. 대한민국과 폴란드는 닮은 점이 많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결연히 맞서 주권을 되찾았고,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항해 확고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폴란드가 낳은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가 러시아 제국 치하에 있던 학창 시절, 러시아어로 러시아 통치자들과 위인들을 읊어보라는 장학사의 지시에 모멸감을 느껴 오열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일제강점기, 모국어와 민족정체성을 지켜낸 대한민국과 폴란드 사이의 역사적 유대감은 그래서인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8월 방문한 폴란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할 당시 제단 가운데서 타오르던 자유를 상징하는 횃불의 모습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마치 서울국립현충원의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에 새겨진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라는 글귀처럼 방식은 다르지만 양국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슈필만은 종전 40주년이 되던 해인 1985년 1월, 미국 A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피난통에 자신을 도와준 한 독일 장교에게 쇼팽의 곡을 들려준 일화를 털어놓았다. 쇼팽의 곡은 그 자체로 슈필만에게 폴란드인이라는 자기정체성과 민족정신이었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과 폴란드는 서로 7750㎞나 떨어져 있지만 이제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제 평화를 견인하는 가장 가까운 주체로 거듭나는 중이다. 특히 이번 대한민국 경제사절단의 폴란드 방문은 인고의 역사로 단단해진 양국이 전쟁 국가의 재건을 위해 방산과 교통,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피아노 연주곡으로 가장 먼저 쇼팽의 녹턴을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 폴란드는 친근하고 익숙한 국가로 뿌리내렸다. 음률과 박자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조화와 균형의 악장'이라고도 불린다는 쇼팽의 녹턴처럼 앞으로 대한민국과 폴란드의 파트너십 행보 또한 조화롭고 균형 있는 연대로 꾸준히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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