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안 늘리고 빚도 안 갚고···"현금 쌓은채 집값만 관망"

조지원 기자 2023. 7. 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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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초과저축 100조]
◆ 한은 "부동산 불쏘시개" 경고
규제완화에 한미 금리 정점 임박
집값 상승 기대감 13개월來 최고
팬데믹에 소비 줄고 월급은 올라
韓 현금자산 비중 美·유럽보다 높아
1주택자 갈아타기 등 활용 가능성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연합뉴스
[서울경제]

한국은행이 팬데믹 이후 130조 원 가까이 증가한 가계 초과저축이 자산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부동산 시장 전반에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가 그만큼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시장 정상화 등을 이유로 대출·세금 등 관련 규제를 속속 완화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도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계가 고금리·고물가에도 소비 또는 부채 상환에 돈을 쓰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혹시 모를 집값 상승에 대비해 실탄을 확보해두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24일 한은이 추정한 결과 팬데믹 이후 우리 가계 부문의 초과저축(팬데믹 이전 추세를 상회하는 가계 저축액) 규모는 101조~129조 원으로 추산된다. 한은은 팬데믹 기간 중에는 해외여행 등이 어려워지면서 소비가 감소했으나 이후 소득이 늘면서 초과저축이 쌓인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에 가계에 평균적으로 쌓이는 저축액 300조~400조 원까지 감안하면 가계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더 늘어난다. 통상 주택 구입 과정에서 대출을 활용하는 만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자금 규모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주연 한은 조사국 과장은 “초과저축이 실업 등 부정적 소득 충격이 발생했을 때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도 “초과저축이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축적돼 여건 변화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돼 금융 안정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정부는 그간 15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부동산 경착륙을 우려해 각종 규제를 완화해왔다. 집값 상승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 한은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 가격 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지난해 11월(61) 저점을 지나 올 들어 상승 전환해 6월 100까지 도달했다. 2022년 5월(111) 이후 1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100보다 더 크면 1년 뒤에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로 부동산 심리가 딱 분기점까지 온 셈이다. 주택 가격 전망 CSI가 선행지표인 만큼 점차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여기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이달 기준금리를 4연속 동결하면서 사실상 금리 인상을 멈춘 상태다. 27일(한국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을 예상하고도 금리를 동결한 만큼 8월에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미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추가 인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은의 최종금리는 현 수준인 3.50%에서 멈출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상승 기대 심리가 커진 가운데 각종 규제가 완화된 상태에서 금리마저 떨어진다면 집값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우리나라 가계가 보유 중인 초과저축은 언제든 부동산 투자로 활용 가능한 예금·주식 등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에 몰려 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2020~2022년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은 1006조 원 늘어나 2017~2019년(591조 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현금·예금 비중은 46.9%로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금·예금자산 비중은 올해 1월 기준 121.8%로 미국(112.5%), 유로(104.4%)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요국에서는 초과저축을 소비 등으로 활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만 이를 쓰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 안팎에서는 집값 상승과 함께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0%로 세계 3위 수준이다. 통상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 등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무주택자가 집을 새로 구매하거나 1주택자가 갈아타기를 할 때 초과저축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를 제한할 수 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예외 대상을 최소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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