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저승사자법이 있어요"…법정 가는 교사들, 무너진 교단

심재현 기자, 박다영 기자, 최지은 기자 2023. 7. 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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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말리다, 팔 잡았다가…학부모 민원에 직위해제·경찰 조사·법원 재판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추모객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를 추모하며 글을 적고 있다. /사진=뉴스1


광주광역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4월 급우의 얼굴을 때리던 학생을 말리다 학부모로부터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다. 학생의 부모는 A 교사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교실 책상을 복도 방향으로 밀어 넘어뜨린 것이 아동학대라고 주장했다. 동료교사들은 '싸움을 직접 제지하다간 오히려 고소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책상을 넘어뜨려 다른 학생을 보호한 것'이라고 탄원서를 냈다. 학부모들도 '적극적인 훈육'이라며 탄원에 동참했다.

광주지법 민사3단독 김희성 부장판사는 지난달 학부모가 A 교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도 A 교사의 행동을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짓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학부모가 검찰의 판단에 불복, 재항고하면서 사건은 광주고검으로 넘어갔다. 사건이 벌어진 뒤 1년여 동안 A 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법정에 불려가는 교사들이 줄을 잇는다. 학부모와 교사가 교정이 아닌 법정에서 만나는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최근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교사들이 '교권 보호와 회복'을 외치고 나선 것도 이런 현실과 맞물려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납득할 만한 훈육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등 교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례가 적잖다는 얘기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같은 반 여학생을 괴롭히는 것을 말리기 위해 교사가 남학생의 양팔을 잡았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도 이런 경우다. 남학생이 교사의 손을 뿌리치려다 손톱에 긁힌 게 신체적 학대라는 이유였다. 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 4년만인 지난해에야 무죄를 선고했다.


교육계에서는 아동학대처벌법을 두고 '교직사회의 저승사자법'이라고 부른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로 신고만 당해도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곧바로 직위해제된 뒤 경찰 수사를 받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학생의 민원에 더 위축되는 이유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권본부장은 "나중에 무혐의 처분이 나와도 그렇게 시달린 교사는 이미 상처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며 "무혐의로 결론이 나도 신고한 학부모나 학생에 대해 교사가 무고죄를 물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 교권 추락을 두고 무고죄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무분별한 신고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63건이던 학부모 등에 의한 교권 침해 건수가 2015년 112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 뒤 2016년 93건, 2017년 119건, 2018년 210건, 2019년 227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되는 교원도 2020년 230건, 2021년 398건, 지난해 468건으로 늘었다.

고소 사건 중에는 체벌이나 성적 접촉 등 부적절한 학대 사건도 있지만 전후 상황이나 맥락상 훈육이나 지도로 볼 수 있는 부분까지 형사사법 문제로 삼은 경우가 상당하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사 김모씨는 "수업 준비를 안 해온 학생에게 '이것도 안 해 왔냐'고 물으면 자존감을 떨어지게 만들었다면서 정서학대로 고소한다"고 말했다.


상식선을 넘어서는 민원 스트레스로 교사가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장낙원)는 2019년 4월 교사 B씨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유족 승소 판결을 내렸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B씨는 2016년 C군이 자신의 지시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욕설을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해도 별 효과가 없자 지도 과정에서 욕설을 했다. C군의 부모는 이를 두고 5개월 동안 5차례 민원을 넣었다. C군 아버지가 면담 자리에서 B교사를 때리려고 했던 사실도 재판에서 인정됐다. B 교사는 정년퇴직을 한 학기 남겨둔 2017년 2월 사직서를 냈다가 사직 처리 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교사에게 극심한 폭언을 하는 학부모나 악성 민원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이들은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하게 제재한다. 영국에서는 수업 방해 수준이 심각한 학생을 일정 기간 수업에서 배제하거나 정학 처분할 수 있다는 점을 교육부 지침에 규정했다. 훈육 과정에서 학생과 타당한 물리적 접촉을 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미국에서는 수업 방해의 반복성을 판단해 단순한 문제 행동이면 학부모 면담과 경고로 해결하지만 반복적으로 교육활동에 지장을 주면 단기 정학 등을 조치한다.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오용해 교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방치하면 결국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해 공교육 전체가 망가진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교사로서 가르칠 권한을 함께 존중해야 한다"며 "학생인권을 두텁게 보호하되 구체적인 면책 지침 등을 마련해 교육현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교권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참모들에게 "정부에서 교권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또 "당과 지자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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