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꽃일까, 미세먼지일까
인생은 가끔씩 빗나간다. 빗나가니까 인생이다. 코로나19 직전, 미세먼지가 최악이던 우울한 날 아침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도 꽃은 피고 새들은 지저귀네요. 밝은 하루 되시기를.' 정말, 한 치 앞이 뿌연 미세먼지로 출근길이 걱정되는 아침이었다. 메시지가 가슴에 닿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꽃일까? 새일까? 미세먼지?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탄성적으로 살고 있는 내 삶에 자극과 변화를 주는 문자였다.
나도 문자를 썼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나요?' 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썼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내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꼭 알고 살겠습니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내가 무엇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게 해준 고마운 날의 아침이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만 보이고 내게서 실종됐던 내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그저, 누구의 삶처럼 나도 맑은 날도 바람 부는 날도 궂은비 내리는 외로운 날도 있었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여기까지 와 있다는 위안을 하면서. 때로는 빗맞은 타구도 행운의 안타가 된다거나 모든 건 팔자라고 변명도 하면서 사는 게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에서 보는 우리 사회 정치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니다. 이성은 혼미하고 인성은 거칠고 감정은 적개심에 불타고 있다. 오직, 나는 '꽃'이고 너는 '미세먼지'다. 모든 게 네 탓이고 후회나 부끄러움이 없다. 그래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알라'는 시대의 소명이 턱밑까지 와 있다.
얼마 전 유자효 시인의 '추석'이라는 시를 읽었다.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꽃처럼 아름다운 시인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부끄러운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꽃과 미세먼지가 뒤얽혀 엉망진창인 보지 않아도 될 사회 정치의 단면을 보고 있다.
나는 무엇인지. 누가 진짜 꽃이고 새인지, 미세먼지 '좋음'인지 '보통'인지 '나쁨'인지를 알아야 할 시간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들을 수없이 듣고 배우면서 살았다. 지금이 바로 실천을 해야 할 때다. 어제는 흘러갔다. 과거니까. 지금이 문제다. 오늘부터다.
뉴스를 보는 보통 사람들은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을 알고 후회를 알고 부끄러움을 알고 미안해할 줄을 아는 사람 냄새 나는 사회, 정치, 정치인의 모습이 보고 싶다. 아름다운 꽃들이 우거진 사회, 정치, 나라가 되고 예쁜 새들이 노래하는 정원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 별나라의 허무한 꿈일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못 만들 것도 없는 그런 사회, 그런 정치, 그런 나라를 생각한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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