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효석문학상] '쓰레기 호더' 할머니를 버리러 숲에 갔다
쓰레기 가득찬 집 둘러싸고
할머니·손녀딸의 시점 교차
"초반 설정에 압도되는 단편"
◆ 이효석 문학상 ◆
김인숙 작가의 단편 '자작나무 숲'은 자작나무 숲을 향해 차량을 운전 중인 손녀딸 '나'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차 안에 동행한 '나'의 할머니는 지금 죽어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할머니를 숲에 '버리러' 가는 중이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오래 기다려왔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도록 낡은 물건과 쓰레기를 집 안에 가득 쌓아두는 저장강박장애자(hoarder·호더)로 평생을 살았다. 할머니가 축적한 쓰레기는 무쓸모했으므로 무가치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나'에게 상속할 집과 땅은 결코 작은 가치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쓰레기집에는 죽은 쥐, 산 쥐, 죽은 벌레, 산 벌레, 병뚜껑, 나무젓가락, 못과 나사, 폐지 따위가 가득했다. 토가 나올 정도로 끔찍한 쓰레기집은 상속을 고대하는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할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나'는 쓰레기집의 등기부등본을 떼지만 그때마다 소유자는 동일했다.
쓰레기집이 한 번도 치워지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 찾아와 설득하면 할머니의 욕설이 음성 처리돼 방송됐다. 결국 쓰레기를 치우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살았네. 고맙습니다, 국민 여러분!" 하지만 그 말이 거짓임을 '나'도 알고 방송국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또 집을 쓰레기로 채웠다. 벌레들은 또 알을 깠다.
할머니는 왜 쓰레기를 쌓아뒀을까. 할머니의 아들인 '나'의 아빠는 18세에 '나'를 낳았다. 하지만 죽었다. '나'는 자주 꿈을 꾼다. 어린 아들이 죽고 난 뒤 호더가 되는 할머니. '나'의 꿈에서 할머니는 아들에게 주지 못한 것을 모으다가 그 기억에 갇혀버렸다.
소설은 할머니가 호더가 된 비밀을 밝히는 서사 구조를 유지하다가 돌연 마지막 장면에서 깜짝 놀랄 반전과 심리적 충격을 준다. 축적과 망실, 기억과 훼손, 보존과 부패, 죽음과 애도, 자아와 타자 등의 주제 의식을 고민해보게 된다.
제목 '자작나무 숲'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자작나무를 '하얀 껍질을 종이처럼 벗겨내는 나무'이자 '한 껍질을 벗기면 또 살아서 다시 하얘지는 나무'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자작나무가 빼곡한 숲은 흔적이 퇴적되는 공간이다. 흰 껍질처럼 사람의 기억에도 모두 이유가 있다. 사람은 매 순간 시간과 기억을 탈피하며 현재의 나를 이룬다. 자작나무 숲은 '나'가 찾아가는 실재하는 산이지만 동시에 정신의 심연이 된다.
심사위원 정이현 소설가는 "호더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손녀라는 점에서 초반 설정에 압도돼 버렸다"고 평했다. 박인성 평론가는 "할머니 시점과 서술적인 자아의 시점이 겹치는 마지막 부분의 힘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심진경 평론가는 "과거 김 작가가 쓴 '빈집'(2012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런 서술 방식은 김 작가의 인장이자 시그니처"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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