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해 달라"…교권침해 배경엔 '악질 학부모'

김지성 기자, 최지은 기자 2023. 7. 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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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피해 학생 부모가 학교에 찾아오고 매일같이 전화를 해대서 '내가 죽으면 해결될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학생부장 경험이 있는 20년차 교사 신모씨는 24일 머니투데이와 한 통화에서 "몇 년 전 학교에 학교폭력 신고가 있었는데 경미한 타박상을 입은 피해 학생 부모가 가해 학생의 강제 전학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형사 소송까지 이어갔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씨는 "최대한 좋게 풀고 학생들을 교화하려 해도 학부모들한테는 먹히지 않고 교화를 잘 못 하다가는 선생님들이 도리어 소송을 당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다들 담임을 맡으려 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한 사건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교사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가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한다.

24일 '민원 스쿨'이라는 이름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지난 21일부터 전날까지 사흘간 현직 교사들이 제보한 학부모 교권 침해 민원 사례 2077건이 게시됐다. 교사 사생활 침해부터 악성 민원, 무리한 요구, 성적 관여, 고소 협박, 학부모의 폭행 등 다양한 교권 침해 사례가 줄을 이었다.

A교사는 "학생 받아쓰기 채점을 빨간색으로 했는데 빗금 표시에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교실로 찾아와 고성을 지른 학부모가 있었다"며 "빨간색 아닌 파란색으로 채점하거나 틀린 문제에 빗금을 긋지 말라고 주장하더라"고 썼다.

B교사는 "체험학습날 아이가 오지 않아 집에 전화하니 아버지가 '학교에서 제대로 지도를 안 하니까 애가 늦잠을 자는 거 아니냐. 아침마다 전쟁이다'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며 "집에서 아이가 늦잠 자는 것도 학교, 담임교사 탓을 한다"고 밝혔다.

아동과 학생 인권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오남용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C교사는 "한 학생 아버지가 아이 발표를 안 시켜줬다고 폭언을 하더니 아동 학대로 고소했다"고 했다. D교사도 "옆 친구를 꼬집고 때리는 학생이 있어 몇 차례 경고 후 책상을 띄어 놓자 학생 아버지가 찾아와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담임 교사가 바뀌면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으니 임신을 하지 말고 피임해 달라"고 요구한다거나 "선생님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솔' 톤으로 이야기 해 달라"고 다그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실제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된 교원은 2020년 230건, 2021년 398건, 지난해 468건으로 증가 추세다. 고소 건에는 학생 체벌, 성적 접촉 등 부적절한 학대도 있었지만 △학생을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음 △공개된 장소에서 벌점 부과 △큰 소리로 혼내 학생이 상처받음 등 훈육·지도 방식을 문제 삼은 사례도 여럿이었다.

일각에서는 학생 인권 증진을 위해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쪽에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학생인권조례 적용을 받지 않는 대구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씨는 "대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말도 안 되는 민원은 어딜 가나 똑같다"며 "학원 교사나 심지어는 변호사까지 대동해 시험 문제가 잘못됐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고 '골프 라운딩 중이니 아픈 아이를 집에 데려다달라'고 한 학부모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걸러내고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해달라고 호소한다. 현행 교원지위법에 '교사가 상해·폭행·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은 경우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해 보호조치를 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악성 민원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이에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등 교육단체들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과도 민원 업무 등에 대한 저경력 교사 보호 시스템 수립 △아동학대법을 악용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교사의 방어권 확립 △초등학교 생활지도 전담교사제 실시 △학생 생활 지도에 대한 '학교의 공동 대응'을 의무화하는 지침 마련을 대안으로 촉구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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