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아들 두고 숨진 러시아군 일기 “죽이고 싶지 않아, 아무도…”

이주빈 2023. 7. 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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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31살 병사가 가족에 보내는 편지 형태로 쓴 일기
“난 돌아와야 하고, 생존해야 하고, 돌아와야 해”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폐허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내린 동원령으로 최전선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러시아 군인이 쓴 일기가 공개됐다.

22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는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의 전선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러시아 모스크바 건설 노동자 비탈리 탁타쇼프(31)의 일기 일부를 공개했다. 

푸틴의 전쟁으로 미래 파괴된 젊은 가족

아내와 두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전쟁에 동원된 탁타쇼프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한 달여의 기간 동안 거의 매일 파란색 작은 공책에 가족에게 남기는 편지 형식으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선데이타임스>는 탁타쇼프의 일기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숨진 러시아 병사의 주머니에서 발견해 제보해왔다고 밝히며 내용을 공개했다.

2022년 11월29일(최전선 근처에서 보낸 첫날)  “가족 모두가 너무 보고 싶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는 체첸군 근처에 머물고 있는데 밤에 총소리가 들린다. 드론이 날아다니고 대포가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11월30일  “무섭고 신경이 곤두서서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를 위해 기도해줘. (가족) 모두를 정말 사랑한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모든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도 살인하지 않고 그들(우크라이나군)도 우리를 죽이지 않길 바란다.”

탁타쇼프는 2018년 배우자 예카테리나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 한 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스크바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 정착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부부가 아들을 품에 안고 미소 짓는 모습, 크리스마스에 쇼핑센터를 방문하는 모습, 세발자전거를 탄 아들과 함께 한 공원 나들이, 더운 여름날 휴가를 보내는 모습, 눈 오는 날 산책하는 모습 등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가족의 행복은 동원령으로 사라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예비역 시민만을 징집 대상으로 하겠다”며 동원령을 내렸다. 이 동원령으로 약 30만명이 징집됐다. 조건은 군 복무 유경험자였지만, <선데이타임스>는 탁타쇼프 가족에 따르면 그는 군대 경험이 없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주민이 지난 1월 키이우 외곽의 도시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오데사 대성당 내부를 사람들이 청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2월4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고 우리는 최전선에서 ‘제로’(최전선의 끝)로 가고 있다. 나는 당신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돌아와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고, 극복해야 하고, 돌아와야 한다.”
2023년 1월초  “내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머릿속이 엉망이고 주변 사람이나 나를 쏴버리고 싶은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직 사랑하는 당신 때문에 버티고 있으며, 당신을 만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탁타쇼프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1월5일까지 33쪽에 걸쳐 전쟁터의 시간을 기록했다. 그는 “정말 사랑하고 빨리 보고 싶어. 두 아이를 더 낳고 싶어. 제발 기다려 줘”라며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초반에는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탁타쇼프는 가족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기를 보면, 그는 오히려 최전선과 더 가까운 곳으로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휴가에 대한 소문이 돌고 2023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이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충동에 시달렸다고 적었다. 탁타쇼프는 다리를 부러뜨려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1월초  “오늘 나는 나무를 자르다가 발목을 부러뜨려서 여기서 나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으로 가서 부츠를 벗고 통나무에 다리를 올려놓고 부러뜨려서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3~6개월 동안 치료를 받겠지만, 내가 고의로 그랬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겠다.”

<선데이타임스>는 “우리가 발견한 것은 푸틴의 전쟁으로 인해 미래가 파괴된 한 젊은 가족”이었다며 “이는 러시아 군인들이 잘 무장하고 전투에 전념하며 승리하고 있다는 크렘린궁의 선전을 무너뜨리는 내용”이라고 보도했다. <선데이타임스>는 “군인이 되기를 강요받은 아버지와 형제들 수천 명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과 참호에서 쓰러져 있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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