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건' 최초 작성자는 '국토부' 아닌 '의문의 업체 직원'
● 국토부가 공개하지 않은 '올해 1월 국토부 공문'에 '변경된 종점 노선' 최초 등장
● '종점 변경' 파일 최초 작성자는 국토부 공무원 아닌 민간업체 '건화 도로부 사원 조○○'로 확인
● 국토부는 "용역업체가 만든 문건" 해명했지만, '건화'는 용역과 무관한 업체라 제 3자 개입 의혹
● 건화 측 "조○○ 씨는 퇴사했다"...국토부 용역업체 측 "조○○은 근무한 사실 없어"
● 단순 해프닝? 국토부가 제 3자에게 노선 변경 자료 사전에 받았을 가능성 제기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고속도로의 종점은 당초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 국토부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으로 종점을 바꿔 발표했다. 강상면 인근에는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몰려 있다. 개발 특혜를 주기 위해 종점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비 1조 8천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2021년에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했다.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예타 다음 단계인 '본 타당성 조사'를 위해 용역을 발주했다. 입찰 결과,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 두 회사가 선정됐다.
국토부와 용역업체 측은 "현장 조사를 해 본 결과 종점을 바꾸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도 예타 이후에 노선이 바뀐 사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 과정이 불투명하고 수상했다. 예컨대, 용역업체는 기존 종점(양서면)이 아닌 새로운 종점(강상면)을 골자로 하는 용역착수보고서를 내놨는데, 용역을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7월, 국토부는 양평군 등 관계 기관과 1차로 협의할 때 주민 의견 수렴이나 전문가 자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각 기관이 원하는 노선을 알아서 그려 오라고 했다'거나 '담당 공무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지도에 그려서 냈다'는 말이 나온다.
올해 1월 국토부 공문에 등장한 '변경 노선도'...1조 원대 국책사업 변경하면서 설명 자료는 달랑 6쪽
뉴스타파는 국토교통부 도로정책과가 지난 1월에 작성한 공문을 입수했다. 제목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평가 관계기관 협의(2차) 요청'이다. 국토부는 이 공문을 하남시, 광주시, 양평군 등 12개 기관에 장관 명의로 보냈다. 그런데 바로 이 공문에 노선의 종점이 바뀐다는 사실이 처음 등장한다.
새로 만든 노선 계획은 '붙임 : 협의자료 1부(별도송부)' 속에 들어 있다.
뉴스타파는 국회 국토교통위 최인호 의원실을 통해 6쪽 분량의 '붙임자료'를 입수했다. 제목은 '서울-양평 고속국도 타당성조사(평가)'다. 사업 개요에는 기존의 예타 결과대로 '양평군 양서면'이 종점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위치도와 노선도는 새롭게 바꾼 '강상면 종점'이 표시돼 있다.
무엇을 근거로 노선을 바꿨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2조 원에 가까운 국책 사업을 하면서 그림 지도 두 장을 보여주고 의견을 달라고 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은 각 기관을 만나서 구두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국토부는 각 기관을 찾아가 노선 변경하려는 이유를 설명한 사실이 없었다.
'붙임 자료' 최초 작성자는 '건화 도로부 사원 조○○', 마지막 저장 기록은 '국토부(MOLIT)'
뉴스타파가 한글파일로 작성된 '붙임자료'의 문서 정보를 확인한 결과 수상한 점이 포착됐다. 이 파일의 문서 정보 내에 문서 요약 페이지를 보면, 내용을 작성한 시점은 2004년 5월 10일, 작성자는 '건화 도로부 사원 조○○'으로 나온다.
문서 통계 항목에는 문서를 마지막에 저장한 사람은 MOLIT, 마지막 저장 날짜는 2023년 1월 13일로 나온다. MOLIT(Ministry of Land,Infrastructure and Transport)는 국토부의 영문 약자다. 문서 정보 내용을 종합하면, 이 한글파일의 최초 작성자는 조○○이고 마지막에 수정을 하고 저장한 사람은 국토부 직원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는 국토부 도로정책과에 연락해 이 한글파일을 작성한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리 과 직원이 작성했다"고 답했다. 이후 기자가 "문서 정보 속에 특정 업체 명과 업체 관계자의 이름이 나온다"고 말하자 "사실은 용역업체 직원이 작성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확인 결과, 최초 작성자 조○○ 씨가 일했던 (주)건화는 국토부가 지난해 발주한 '서울-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조사' 용역에 입찰했다가 떨어진 업체였다. "떨어진 업체가 자료를 만들어줬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 이후 현재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고 있는 업체 경동엔지니어링 관계자 A씨가 연락을 해왔다.
A씨는 "회사 여직원이 해당 한글파일을 만들면서 건화의 옛날 파일을 이용했다"고 했다. 업계에서 서식이나 폰트 등을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일종의 '족보'처럼 다른 회사 파일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입찰 탈락한 업체의 퇴사 직원 조○○, 현재 용역 중인 두 업체에도 근무한 사실 없다
변경 노선 문건의 최초 작성자 조○○ 씨는 (주)건화를 오래 전에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씨는 국토부의 용역을 맡고 있는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과도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취재를 종합하면, 몇 가지 가능성이 점쳐진다.
첫째, 용역업체 측 주장대로 다른 회사의 '족보 파일'을 여직원이 재활용했을 경우다. 하지만 사진 2쪽과 표지 1쪽을 빼면 글자수 850자, 3쪽에 불과한 문건을 만들면서 다른 회사의 오래된 파일을 재활용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경로로 다른 업체의 파일을 받아서 활용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둘째, 국토부 용역업체가 (주)건화 측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 받았을 가능성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주)건화는 2019년에 광주-양평 도로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한 실적이 있었다. 양평군 일대의 교통 및 환경 영향을 충분히 잘 알만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건화로부터 고속도로 관련 자료를 받은 사실이 있냐"는 질문에 경동엔지니어링 소속 A씨는 "그런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건화에게 용역을 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는 관련 자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셋째, 제 3의 인물이 국토부의 용역에 관여했을 가능성이다. 문제의 '붙임자료' 외에도 용역업체가 국토부에 제출한 문건 중에는 최초 작성 시점이 2010년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 용역업체가 지난해 5월 국토부에 처음 제출한 용역 착수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용역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종점 변경을 제안했다. 이 때문에 국토부 혹은 제 3자로부터 사전에 관련 데이터를 제공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용역 초기부터 변경된 종점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모든 자료 공개" 외쳤지만, 이미 국회에 제출한 자료도 상당수 누락
국토부는 어제(23일) 제기된 의혹을 국민들에게 직접 검증받겠다면서 55건의 자료를 공개했다.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작성된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자료를 공개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2023년 1월 16일자 국토부 공문(관계기관 협의 2차) 및 붙임자료는 빠져 있다. 또 대부분 자료를 PDF 파일로 공개했는데, 한글파일이 아닌 경우에는 최초 작성자와 작성 일시를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지난해 5월에 용역업체가 제출한 용역 착수 보고서 자료도 누락된 것으로 확인된다. 국토부가 이미 국회에 제출한 자료들인데, 정작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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