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이 글 쓴다,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다” 숨진 러 군인의 戰場 일기

예비군 동원령으로 강제 징집됐다가 숨진 러시아 병사 비탈리 탁타쇼프의 사진과 일기장. /더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보도화면

“무섭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비군 동원령으로 강제 징집됐다가 숨진 병사가 유품으로 남긴 전장 일기가 공개됐다. 그 안에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지난 22일(현지시각) 일요판 선데이타임스 기사를 통해 러시아 병사 비탈리 탁타쇼프(31)의 일기장 내용을 보도했다. 1년 반 전만 해도 탁타쇼프는 모스크바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2018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고 두 살배기 아들을 뒀다. 그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매일은 평범했지만 그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런 일상이 악몽으로 변한 건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부터였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전쟁에 푸틴 정부는 그해 9월 예비역을 대상으로 한 부분 동원령을 발령했다. 그리고 탁타쇼프는 두 달 뒤인 11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토크마크 전선에 투입됐다. 따뜻한 가족 품에서 불과 몇 달 만에 전장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었다.

총성이 이어지는 그곳에서 탁타쇼프는 종이와 펜을 들었다.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와 전쟁터에서의 삶을 써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그가 빽빽하게 눌러 쓴 일기 형식의 기록은 33쪽 분량에 달했다. 전장 투입 첫날인 11월 29일 시작된 글은 최전선에 끌려가게 된 12월 4일까지 이어졌고 올해 1월 5일을 마지막으로 멈춰있었다.

“우리는 (체첸군) 근처에 머물고 있는데 밤에도 총소리가 들린다. 드론이 날아다니고 대포가 작동하는 걸 봤다. 가족 모두가 너무 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2022년 11월 29일)

“곧바로 전투에 투입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두렵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 글을 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모두를 정말 사랑한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모든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도 살인하지 않고 그들(우크라이나군)도 우리를 죽이지 않길 바란다.”(2022년 11월 30일)

“최전선에 끌려가게 됐다. 나는 당신(아내)을 정말 사랑한다. 빨리 보고 싶다. 당신과 두 명의 아이를 더 갖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고 손주들과 함께 놀기 위해, 당신과 함께 늙어가기 위해. 부디 나를 기다려 달라.”(2022년 12월 4일)

탁타쇼프는 중간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가에 대한 희망을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 취소되자 절망스러운 심정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심지어는 “머릿속이 엉망이다.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오늘은 나무를 자르던 중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가족 곁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0월 20일 랴잔 지역 예비군 훈련장을 찾아 병사를 격려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가 일기 쓰기를 돌연 중단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전선에서 싸웠던 탁타쇼프의 시신은 이달 첫째 주 자포리자 지역 남동부 평원에서 우크라이나군에게 발견됐다. 우크라이나군은 탁타쇼프의 군복 주머니에서 구겨진 일기장을 찾아냈고, 그의 시신을 땅에 묻어준 뒤 일기장을 언론에 넘겼다고 한다.

선데이타임스는 “우리가 찾은 건 푸틴의 전쟁으로 인해 미래가 파괴된 한 가정의 모습이다. 그들과 같은 수천 명이 있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군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멀리 떨어진 참호에서 죽었다”며 “이들의 이야기는 크렘린궁의 거짓말 뒤에 숨은 잔인한 현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