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스웨덴이 중립 버리고 NATO 선택한 이유
200년 넘게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온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합니다. NATO는 북미와 유럽의 집단방위 체제입니다. 스웨덴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미국·소련의 냉전 시절에도 흔들림 없이 중립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자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NATO 가입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스웨덴은 ‘무장중립’을 통한 중립국 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정규군과 민방위, 방위산업 등 강력한 방위력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중립국 전략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그런 무장중립이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일었습니다. 더 강한 안보 체계인 NATO에 합류해 나라를 지키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스웨덴의 NATO 가입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자국 안보를 지킬 힘의 중요성입니다. 이는 “힘에 의해서만 평화가 담보될 수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다음으로, 동맹국들과의 안보 협력이 필수란 점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NATO와 ‘초밀착 정보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부 반론도 있지만, 한·미·일 동맹을 강화한 데 이어 이번 성과까지 더해져 우리나라 안보가 한층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의 중립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NATO와 러시아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어정쩡한 군사력과 중립 정책으론
국가 안위·국민 생명 지킬 수 없어요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은 세 차례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유럽의 여러 나라와 벌인 나폴레옹전쟁(1792~1815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입니다. 모두 유럽에서 발발했거나 유럽에서 시작돼 세계로 확산된 전쟁입니다. 이처럼 유럽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현장이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소련(러시아), 이탈리아 같은 강대국과 달리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전쟁에서 제물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약소국의 대안 ‘중립’
이들 국가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양측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후 1815년 빈(Wien)회의에서 스위스의 중립이 승인되면서 중립 정책은 약소국들의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잇달아 터지면서 유럽의 변방 국가들은 전쟁의 참화에 다시 휩쓸렸습니다. 1955년 오스트리아가 중립국가로 승인되자, 북유럽 국가들은 중립을 더욱 유력한 대안으로 삼았습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던 시기였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념적으로나 정치제도적으로는 서구에 가까웠지만, 지리적으로 강대국 소련의 직접 영향권에 놓여 있어 안보가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북유럽 국가들로선 서방의 공격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소련의 군사적 위협은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노르딕 밸런스
그 결과, 친서구적 요인과 친소련적 요인이 공존해 세력균형을 이루는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1961년 ‘각서위기(Note Crisis)’라는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서독(1990년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방 연합군이 주둔한 지역)과 덴마크가 공동 군사 시스템을 구축하자, 동독을 차지하고 있던 소련은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그래서 핀란드에 외교문서를 보내 1948년 체결한 ‘핀란드·소련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에 따라 군사적 협의를 하자고 요구합니다. 핀란드는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있던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의 전쟁 준비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소련을 설득합니다. 소련은 북유럽의 세력 균형을 깨는 것이 자국에도 이득이 안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북유럽에선 중립국가를 가운데 두고 친서구와 친소련 세력이 평형을 유지하게 됩니다.
스웨덴, 무장중립 포기
중립국가들은 평화 시에도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외국이 자국 내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도 거부합니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다른 나라 간 군사적 충돌에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합니다.
중립국가가 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국제법에 근거해 중립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조약을 체결해 중립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스웨덴은 이들 국가와 다릅니다. 1812년 중립을 채택한 이후 어떠한 전쟁에도 연루되지 않았고, 동맹에도 참여하지 않아 중립을 국가적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강력한 방위력에 근거한 중립 정책을 강화합니다. 이른바 ‘무장중립’입니다. 그렇다고 강대국에 맞설 군사력을 갖긴 어려우니 ‘마지널 독트린(Marginal Doctrine)’이란 논리에 기댑니다.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충돌해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양측의 주력 부대가 스웨덴에 올 가능성은 작으니 그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논리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실상 전면전을 벌이고 있으니까요. 스웨덴이 NATO의 32번째 동맹국이 되려는 것은, 적당한 수준의 군사력과 중립 정책으론 국가의 안위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유럽에서 벌어진 주요 전쟁을 정리해 보자.
2. 노르딕 밸런스를 설명해 보자.
3. 스웨덴이 무장중립을 포기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한국-NATO, 군사 기밀 공유
안보는 선제 대응이 중요합니다
피터대제(표트르 1세)는 18세기 러시아의 근대화와 영토 확장을 추진한 절대군주였습니다. 그가 통치하면서부터 동유럽은 러시아에 중요한 ‘완충지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진영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창설되면서 러시아는 NATO의 동진(東進, 동쪽으로의 확장)이 못마땅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공산권 국가들과 함께 NATO에 대응하려고 1955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구는 1991년 소련 붕괴 직전에 해체되었습니다.
핀란드, 31번째 NATO 동맹국
1990년 미국은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이 동독 내 소련군을 철수시키고 독일 통일에 협조한다면, NATO는 현 위치에서 1인치도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유명한 ‘1인치’ 발언입니다.
푸틴은 2000년 처음으로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 “러시아의 이해가 고려되는 대등한 파트너 관계라면 NATO 가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NATO 가입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1인치 약속도, 러시아의 NATO 가입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서방 진영 입장에서는 2차 대전 후 소련의 팽창을 막아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병력이 1300만 명에 달하던 소련은 1948년엔 280만 명까지 병력을 줄였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력과 군 장비를 보유한 나라였습니다. 소련은 동독을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을 잇달아 위성국가로 만들며 세력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서유럽 국가들은 개별 국가가 소련을 막아 낼 수 없다고 판단해 집단 안보 체제인 NATO로 모여들었습니다. 1949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 12개국으로 출발해, 소련 붕괴 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연이어 회원국으로 가입합니다. 올해 4월엔 핀란드가 31번째 동맹국이 됐습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푸틴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NATO의 팽창주의’에 맞서겠다는 명분을 앞세웠습니다. NATO가 세력을 더 키우는 것,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저지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러시아, 미국, 영국과 함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핵무기를 포기합니다. 소련이 해체될 때 물려받은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핵폭격기 등을 모두 러시아에 넘겼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당시 세계 3위 핵전력 국가였던 점이 부담스러웠던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6년 채택한 헌법에 ‘비동맹과 중립’을 기본 원칙으로 명기하기도 합니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촉발된 시민혁명인 오렌지혁명이 일어나 친서구적 유셴코 정권이 등장합니다. 유셴코는 NATO 가입을 국가 전략목표로 설정합니다. 2019년 헌법 전문에 NATO 가입을 국가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명문화하고, 같은 해 지금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안보 위기 발생 후 대응은 옳지 않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지만, 안전을 보장받기는커녕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사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의사 결정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이 끝나면 NATO에 가입하려고 하지만,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강대국들 간 이해관계가 어떻게 작동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죠. 안보 위기가 터진 뒤 뒤늦게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안보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선적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NATO 정상회의에서 NATO와 군사 기밀 공유를 확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NATO의 ‘전장 정보 수집 활용 체계(BICES)’에 참여해 안보 위협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것입니다. NATO의 위상이 자유 진영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이런 성과는 우리나라 안보 패러다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NIE 포인트
1. NATO 동맹국이 늘어난 과정을 조사해 보자.
2.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대해 토론해 보자.
3. NATO와의 협력 확대 의미를 생각해 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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