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도, 재질도 다양한 '어느 수집가'의 돌…작품이 된 박물관(종합)
건축가 김수근-수집가 이건희 '만남' 주목…'인왕제색도' 한 달간 전시
(청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전시실을 둘러본 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계단을 따라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환한 풍경이 들어왔다.
가로 4m, 세로 2.4m 정도의 유리 너머의 바깥 모습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살짝 붉은 빛이 도는 듯한 대리석, 단단해 보이는 화강암 등 다양한 색상과 재질의 돌 조각이 인사를 건넨다.
짝을 이룬 것이 총 5쌍, 모두 10점이다. 하지만 표정도,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크기의 장독이 놓였었던 공간은 이들을 위한 무대가 됐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각양각색의 석조물은 박물관이라는 액자에 담긴 작품이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830여 점의 '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국립청주박물관은 이달 25일부터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서화, 도자, 금속 공예품 등을 소개하는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선보인다.
광주, 대구에 이어 지역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전시다.
지난해 열린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을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18건을 포함해 총 201건, 399점의 기증품을 모았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24일 공개된 전시를 보면 청주에서 만나는 '어느 수집가'는 그가 모은 돌 이야기로 시작한다.
박물관은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가운데 마을을 지키는 돌장승(벅수), 관복을 갖춰 입은 문인석, 어린아이를 닮은 동자석 등 총 459건, 836점의 석조물을 보관·관리해왔다.
약 210점의 석조물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박물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청명관을 오르내리는 길목에는 크고 작은 석인상이, 청련관 지붕 아래에는 연꽃이나 용 무늬를 새긴 돌 조각이 관람객의 시선을 기다린다.
석조물 전시 기획을 담당한 전효수 학예연구사는 이날 열린 언론 공개 행사에서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이 만든 공간에 '이건희라는 또 다른 거장의 석조물이 잘 어울리도록 여러 차례 고민했다"고 말했다.
전 학예연구사는 "보존 처리가 끝난 석조물을 옮기고 배치하기까지 5일 반나절 걸렸는데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각 석조물에 담긴 마음, 염원을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본격적인 전시는 충북 지역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조선 후기 화가인 윤제홍(1764∼1845 이후)이 단양팔경 중 하나인 구담봉을 그린 '구담봉도'가 대표적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송시열(1607∼1689)의 제자이자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로 꼽히는 권상하(1641∼1721) 초상도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볼 수 있다.
두꺼운 다리 모양 때문에 개다리소반으로도 불리는 충주반으로 연출한 공간도 눈에 띈다.
전시를 기획한 김동완 학예연구사는 "충청 지역의 특성과 다양한 석조물을 잘 살려서 배치했다"며 "광주, 대구와는 전시 공간이나 구성에서 다른 점이 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수집 여정을 보여주는 '수집가의 다양한 관심' 부분에서는 서화, 도자뿐 아니라 다양한 서책, 불교회화, 공예품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금속공예 부문에서 특화된 박물관답게 세밀하게 세공된 꾸미개도 처음 선보인다.
김동완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기증품을 재질에 따라 영역을 나눠 관람객들이 차근차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전시된 기증품 모두 수준이 높아 정말 수집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대표하는 기증품이자 소장품 번호로는 '건희 1'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는 전시 2부 '수집가의 보물' 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쓴 서예 작품인 '정효자전'도 함께 공개된다.
다만 작품 보호를 위해 인왕제색도는 8월 20일까지, 정효자전은 8월 1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이후에는 단원 김홍도(1745∼1806)가 말년에 그렸다고 전하는 보물 '추성부도'(10.11∼29), 정약용의 '정부인전'(8.17∼9.6) 등이 관람객과 만난다.
'어느 수집가' 전시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책가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책장에 서책과 문방구 등을 그려 넣은 그림인 책가도와 이를 활용한 진열장은 다른 지역 전시와 달리 후반부에 등장한다.
김 학예연구사는 "옛사람이나 수집가가 아끼는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며 "소중한 수집품과 함께 하루하루가 더 의미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며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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