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종전, 가로막힌 평화[정전70년]

유새슬 기자 2023. 7. 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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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기 파주 임진각 철조망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권도현 기자

“한반도는 며칠 안에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의 지난 22일 발언은 최근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 상황과 동시에 정전체제의 불안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남북한과 관련국들은 지난 70년 동안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과도기 상태에 머무른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은 여전히 현실적이다.

열강 주축, 군사적·임시적인 합의

한국전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 전쟁 성격이 강했다. 한국군 작전지휘권은 유엔군 사령관에 이양됐고 북한군은 소련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정전에 대한 논의, 정전협정 체결, 정전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것은 모두 남북의 소관 사항을 크게 뛰어넘는 일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공감대로 휴전협상에 물꼬가 트였다. 1951년 정전협상을 위한 1차 본회의가 시작됐지만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만 두고 약 4개월, 포로 교환 문제를 두고 수십 번의 회담이 진행되는 등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53년 미·소 내부 상황이 바뀌면서다.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같은 해 1월 당선됐고 두 달여 뒤, 포로 교환에 반대해온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사망했다. 같은 해 158차 본회의에서 비로소 협상이 타결됐다. 협정문을 만드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린,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이었다.

어렵게 체결됐지만 정전협정은 개념적으로 임시적이고 군사적인 합의일 뿐이다. 협정문 서문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라고 규정했다. 남은 과제는 남북 간의 전쟁을 정치적으로 매듭짓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전협정 체결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일이었다.

평화체제 시도…주변국의 ‘동상이몽’

“3개월 이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정전협정 60항)

남과 북, 미국, 소련, 유엔군 참여국까지 전 세계 총 19개국에서 파견된 대표단은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 모였다. 종전을 공식화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합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엔군과 공산군의 철수 문제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러 모두 한반도를 지렛대 삼아 서로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4월26일 시작된 제네바 회담은 한반도에 대한 어떤 유의미한 논의도, 결론도 없이 6월15일 종료됐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다시 머리를 맞댄 것은 1997년 남·북·미·중이 참여한 4자회담이었다. 그 사이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엄연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당사자를 북·미로 한정하려 했다.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한국과 마주 앉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면서 4자회담은 6차례의 회담을 끝으로 종료됐다. 2003년 시작된 6자회담도 북핵·미사일 도발에 4년 만에 중단됐다.

핵을 무기 삼아 체제 보장을 받고 싶은 북한과 핵 위협에 맞서려는 미국, 그리고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중국. 관련국들의 각자 다른 이해는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냉전 시대 수많은 국가가 참전한 한국전쟁의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의 산물이었던 정전협정은 역사상 가장 긴 정전체제로 이어졌다.

한·미 정권 따라 출렁이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려는 국내 정치적 시도는 더디지만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 발 힘겹게 내디디면 빠르게 뒤집히는 일이 반복됐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래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치적인 해법은 작지 않은 한계를 가진다. 정치 지도자는 국내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 노선도 바뀌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평화체제 논의는 북핵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한·미 집권 여당이 북핵을 다루는 방식은 각자의 정치적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 그 탓에 한국 또는 미국에서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한반도도 출렁였다.

9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종전선언을 제시했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등 군축 합의도 포함됐다. 정전체제라는 과도기를 탈피하기 위해 종전선언이라는 또 다른 중간 다리를 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보수정권 9년 동안 소원해졌던 남북 간 신뢰를 서둘러 매듭지으려 하면서 부작용이 드러났다. 미국 국내정치라는 변수를 경시했고, 북·미관계가 남북 관계에 주는 영향은 크지만 거꾸로 한국이 북·미를 움직이기는 힘들다는 점을 간과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론으로 이어졌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한반도에는 호전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현 정부는 ‘북한 정권 종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미국의 전략 핵무기들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회수도 늘어났다. 평화로 나아가야 할 정전체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24일 경기 파주 임진각 철조망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권도현 기자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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