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함만 주고 사라진 ‘프레시백’…문앞 ‘신선배송’의 그림자 [뉴스 인사이드]

김나현 2023. 7. 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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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택배기사 하루 동행 르포
#오전 10시 45분 ‘앱에 뜬 159’
오후 2시까지 배송물량 200개인데,
프레시백 회수 150여개 할당돼
탑차 화물칸 택배상자와 뒤엉켜 포화
#오후 3시, 다시 도착한 캠프에선
수거 프레시백 100여개 뒤처리 도맡아
펴고 쌓고… 아이스팩·쓰레기 치우고…
야간 택배적재 서둘러도 목표시간 훌쩍
#무더위·허기보다 회수 더 힘들어
반품회수 다름없는데, 보상은 반의반
‘배달구역 잃을라’ 울며겨자먹기 계속
“보상 강화·전문수거 인력 필요” 지적
#쿠팡 측 “택배노조의 악의적 연출”
“계약서 상 프레시백 회수 포함돼”
“아이스팩 처리 인력 투입해 부담 덜어”

“아, 어딨지. 도저히 못 찾겠어요.”

지난 5일 낮 12시30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상자를 꺼내던 택배기사 정혁민(42)씨가 당황한 기색으로 1t 탑차 화물칸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배송할 택배 수량이 맞지 않자 정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화물칸은 택배 상자와 프레시백(식선식품 택배 주문 시 사용하는 보냉가방)이 마구 뒤엉켜 포화 상태였다. 형형색색의 프레시백 더미에 묻힌 택배를 찾느라 표정이 어두워진 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라진 택배 찾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가 탑차 속 프레시백 40여개를 모두 도로 꺼낸 뒤에야 사라졌던 택배 상자가 등장했다.

지난 5일 오후12시30분 오전 동안 수거한 프레시백과 택배 물량이 화물칸에 뒤섞여 있다.
쿠팡 택배기사 정씨의 하루를 이날 동행했다. 오전 8시 택배 적재가 이뤄지는 경기 용인시 수지구 ‘쿠팡 용인3캠프’에서 시작된 그의 일정은 밤 11시에 끝이 났다. 장장 15시간 동안 정씨를 괴롭힌 건 여름날의 무더위도, 끼니를 거르며 찾아온 허기도 아니었다. 그의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 것은 바로 ‘문 앞의 신선함’을 약속하는 프레시백이었다.

◆“프레시백, 반품 회수랑 마찬가지”…보상은 반의반

오전 10시45분 적재를 마친 정씨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앱)에 ‘159’라는 숫자가 떴다. 정씨에게 회수하도록 할당된 프레시백의 개수다. “오후 2시까지 배송해야 하는 택배만 200개인데, 프레시백 회수를 하러 몇십 군데는 추가로 들러야 한다는 의미”라고 정씨는 말했다.

정씨가 화물칸이 가득 차자 프레시백을 빈 터에 잠시 꺼내 두고 있다.
말을 끝낸 그는 급히 한 교회로 차를 몰았다. “프레시백을 보관할 공간을 확보하려면 동선이 꼬이더라도 커다란 택배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에 가장 부피가 큰 택배 6개를 내려놓은 정씨는 왔던 길을 돌아 원점부터 다시 배송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 시작부터 꼬이게 만드는 프레시백의 수거 보상가는 건당 100∼200원. 기본 배송 또는 반품 회수의 경우 건당 700∼800원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정씨는 “프백(프레시백)은 반품 회수나 마찬가지고 아이스팩 처리 같은 잔업무도 많은데, 보상은 반의반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프레시백을 펴서 널자 고여있던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배송 4개 프백 5개”, “배송 5개 프백 7개”. 나르고 수거해야 할 물량 체크를 하며 정씨가 중얼거렸다. 오후 1시가 되자 택배 배송보다 프레시백 회수 건수가 많은 구역이 속출했다. 심지어 전날 내린 비로 주택 입구나 아파트 현관에 둔 프레시백들은 여지없이 물을 머금었다. 프레시백 내부에서 녹아버린 아이스팩이 터진 경우도 다반사였다. 축축한 프레시백들을 화물칸에 실어 택배가 오염될 경우 피해 보상은 모두 기사 몫이다. 그러니 프레시백을 잘 말려서 싣는 일도 기사가 떠안는다. 정씨가 잔뜩 젖은 프레시백을 평평히 펴 양지 바른 곳에 널자 고여있던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후 3시, 2회차 물량을 적재하기 위해 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정씨가 조급해하기 시작했다. “오후에 들어오는 신선 물량은 무조건 8시 전에 끝내야 돼서 ‘빡배(빡센배송)’모드로 뛰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택배 상자 적재가 급한데도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정씨가 한 일은 지금껏 수거한 수십 개의 프레시백을 펴 차곡히 쌓는 것이었다. “보통 택배사엔 없는 일이죠. 회수가 끝이 아니라 하루종일 얘(프레시백)랑 전쟁이에요.”

정씨가 회수한 프레시백을 화물칸에 넣고 있다.
프레시백에선 쓰레기와 아이스팩이 튀어나왔다. 아이스팩을 찢어 물을 버리고 분리수거까지 해야 한다. 쉴 틈 없이 움직였지만 프레시백 뒷처리에만 34분이 걸렸다. 이후 서둘러 적재에 나섰지만 이미 출차 목표인 오후 4시를 훌쩍 넘겼다. 

야간 배송에서도 단 1초라도 아끼려는 정씨의 사투는 계속됐다. 아파트 현관에는 끌차 등을 위한 경사로가 있었지만 정씨는 택배를 한가득 안고 계단으로 뛰어올랐고,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는 달달 외워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달려가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엔 계단으로 뛰어가 2층에 택배를 밀어넣었다. 1분1초가 부족한 정씨는 이날 한순간도 걷지 않았다.

동시에 프레시백의 훼방도 이어졌다. 열심히 일할수록 오히려 회수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회수 요청을 받고 가도 10건 중 3건은 고객이 내놓지 않았거나 회사가 지정한 프레시백이 아니어서다. 정씨는 “프레시백 보상 안 받아도 되니 택배 배송에 집중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배송율, 회수율 떨어지면 ‘클렌징’ 되기도”

정씨는 쿠팡의 물류를 담당하는 쿠팡로직스틱스(CLS)에 직고용된 기사가 아니다. CLS가 위수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배송하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다. 특고는 회사에 종속돼있지 않다고 봐 흔히 개인사업자로 간주된다. 개인사업자 정씨는 왜 보상도 미미하고, 배송 효율을 떨어뜨리는 프레시백 회수를 계속 할까.

“신선 배송율이나 프백 회수율이 떨어지면 ‘클렌징(배달구역 회수)’ 당할 수 있다”고 정씨는 말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에 따르면 클렌징이란 쿠팡의 물류를 담당하는 쿠팡로직스틱스(CLS)이 위탁 대리점으로부터 배달 구역을 회수할 수 있는 제도다. CLS가 배달 구역을 회수하면 대리점 기사들은 일터에서 ‘깨끗이 지워지는 식’이라는 설명이다.

배송 물량보다 프레시백 회수 건수가 많은 구역이 계속 나타났다.
지난 13일에는 참여연대,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등이 CLS를 대리점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신고서 초안을 작성한 이주한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CLS가 신선식품 배송율, 휴무일 배송율, 파손율, 회수율 등의 지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의무를 대리점에 부과했다”며 “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거나 용역의 공급을 축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데, 이는 대리점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에 CLS 측은 “참여연대의 주장은 택배 대리점이 배송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특정 노선에 대한 독점적 운영권을 무제한 보장해주라는 말로 보인다”며 “택배노조는 프레시백 수거 과정을 악의적으로 연출해 CLS 택배기사의 업무여건을 왜곡하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택배 대리점 계약서 상에 프레시백 회수 업무가 명시돼 있으며, 배송수수료에 프레시백 회수 대가가 포함된다”며 “업무시간이 길다고 해서 대리점에서 추가 인력을 배치하려 해도 택배기사들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택배기사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지적에는 “CLS는 업계 최초로 분류 작업(캠프에 도착한 물량을 배송구역별로 나누는 일)을 하는 전담 인력을 둬 배송인력의 업무 부담을 줄였다”며 “프레시백에 대해선 아이스팩 처리 전담 인력을 지난 9일부터 투입했고, 기존 프레시백 회수율 기준을 90%에서 야간 40%·주간 60%로 조정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3시 정씨가 운전하며 급히 해치운 빵 봉지가 차 안에 널부러져 있다.
배송율, 회수율 등 각종 수치에 쫓긴 정씨가 지난 5일 출근해서 먹은 음식은 편의점에서 산 식빵 하나와 초코우유 두 개, 컵라면 한 개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차 안에서 허겁지겁 해치운 정씨에겐 체할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정씨는 이렇게 주 5∼6일을 일한다. 2020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이른다.

늦은 밤 배송을 마친 정씨는 저녁 내내 회수한 프레시백 수십 개를 탑차에 밀어넣었다. 정씨는 “프레시백 전문 수거 인력이 필요하다”며 “그게 안 된다면 프레시백 회수 노동에 제 값이라도 받고 싶다”는 말을 남긴 뒤 퇴근길 탑차의 시동을 걸었다.

성남=글·사진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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