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온 9세 돌려보냈더니 신고…소아과 원장 “회의감에 문닫는다”
또 한 곳의 소아과가 문을 닫았다. 광주광역시 한 소아과가 악성·허위 민원을 제기한 환자의 보호자로 인해 폐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2주 만이다. 이번에 문을 닫기로 결정한 소아과 원장 역시 보호자 민원에 회의감을 느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폐업 안내문을 공유했다.
이 안내문엔 “최근 9세 초진인 A환아가 보호자 연락과 대동 없이 내원해 보호자 대동 안내를 했더니 보건소에 진료 거부로 민원을 넣었다”며 “보호자의 악의에 찬 민원에 그간 어려운 상황에도 소아청소년 진료에 열심을 다한 것에 회의가 심하게 느껴져서 더는 소아에 대한 진료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원 측은 또 안내문을 통해 “본 의원은 환아의 안전과 정확한 진찰을 위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14세 미만 환아의 진료는 응급사항이 아닌 이상 시행하지 않고 있다”며 “보호자 없는 진료에 대해 의사의 책임을 물은 법원 판례가 있으며, 보호자 대동은 아픈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자 의무”라고 덧붙였다.
앞서 임 회장은 해당 의원의 폐과 소식을 알리며 “후배한테 전화 왔는데 9살짜리 아이 혼자 진료받으러 왔길래 부모한테 전화하라고 했더니 부모가 보건소에 진료 거부로 신고해서 보건소 공무원이 진료 거부 조사명령서 가지고 나왔다더라”며 “이 지역 소아청소년과는 여기밖에 없다”고 썼다. 다만 해당 글의 내용은 수정된 상태다.
이와 관련 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환아 보호자로 추정되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다. 이 네티즌은 “아이가 학교에서 열난다고 연락이 와서 병원 예약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하고 아이를 보냈다”며 “그런데 만 14세 이하는 보호자 없이 진료 볼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고 썼다.
이어 “열이 많이 나서 힘들어 하는데도 단칼에 5분 이내로 오실 수 있냐고 해서 근무중이라 바로 못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고, 퇴근 시간 맞춰 다른 의원으로 갔다”며 “병원가서 열쟀더니 열이 39.3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어디다 민원 넣고 싶다”며 “정말 법적으로 보호자 없이 진료를 볼 수 없나. 다른 병원 다니는 지인 아이들은 혼자 다닌다더라”고 하소연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온 미성년자 아이들의 진료거부는 의료법과 보건복지부 등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의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보호자 없이 혼자 온 환아를 진료할 경우 생길 혹시 모를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능력은 행위능력이 아니라 의사능력이라고 보고 있고, 미성년자도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능력이 있다”며 “하지만 9세 아이가 혼자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보호자가 동반해 설명을 듣고 동의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만일 혼자 온 9세 아이에게 진료를 하고 부작용이 발생하면 어떻게 불과 9세 아이 말만 듣고 진료를 했냐고 비난을 할 것이고, 소송도 제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권리만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라며 “부모도 잘못했지만 잘못된 법을 개정해 멀쩡한 소아과 선생님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해 이미 30곳이 순감한 상태다. 또 성인보다 진료가 힘든데다 의료사고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어 향후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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