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차도에서 끊긴 삶들…예의조차 없는 해명

신다은 기자 2023. 7. 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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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던 스물네 살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버스 안에 물이 차오르자 "살려줘, 제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

급행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창문 깨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버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아내에게 작별의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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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7월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시신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던 스물네 살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버스 안에 물이 차오르자 “살려줘, 제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 토요일 아침 출근하러 나선 70대 어머니는 아들에게 “비가 많이 온다. 괜찮으냐”는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통화였다. 급행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창문 깨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버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아내에게 작별의 전화를 걸었다.

비가 쉼 없이 퍼붓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세종시의 치과병원 의사가 동료와 함께 출근 중이었고 결혼한 지 두 달 된 새신랑이 임용시험 보러 가는 처남을 차로 바래다주던 길이었다. 6만t의 강물이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를 덮친 2023년 7월15일 아침 8시40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된 그들의 일상이 사라졌다 .

수많은 전조가 있었다. 새벽 4시10분 미호강 홍수 경보가 발령됐고 6시34분 홍수에 대비하라는 전화가 흥덕구청으로 걸려왔다. 7시56분 제방이 무너졌고 8시 전후로 119와 112 신고가 빗발쳤다. 그래도 침수 직전까지 궁평2지하차도는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됐다.

위험 인지 감각이 무뎠고 위기 대응에도 무능했다. 수많은 경고 신호에도 도청은 차도에 차오른 수위만 보고 있었다. “서서히 물이 차올라 터널 중앙이 50㎝까지 찰 때” 차도를 통제하려 했다고 도청은 설명한다. 시청은 가까운 거리의 지하차도를 순찰하면서도 궁평2지하차도는 관할이 아니란 이유로 제외했다.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는 기후재난 앞에서도 도청, 시청, 구청은 평소의 행정 관행을 꼭 붙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침수가 시작되며 인력이 크게 부족해졌지만 이를 증원할 컨트롤타워는 공백 상태였다 .

재난 대응에서 조직 수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공무원들이 신경 쓰는 ‘상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인력이 적은 곳에 즉시 사람을 보내고 기관 간 소통 오류를 조율할 힘을 가진 몇 안 되는 주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컨트롤타워인 ‘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이 지자체장으로 돼 있는 이유다. 하지만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7월20일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내가) 거기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책임 회피 발언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해를 인지하고도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며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했을 때와 꼭 닮은 발언이다. 수장이 있으나 없으나 재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수장은 왜 존재하는가. 그런 수장에게 어떻게 안전을 믿고 맡기나. 국민은 묻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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