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슬픔도 아름답게 하는 ‘함께’라는 믿음[천지수가 읽은 그림책]

기자 2023. 7. 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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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코끼리’ 표지



intro

그림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아늑한 기분에 빠지곤 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랄까. 온 우주가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휙~ 하고 나를 그 시간으로 보내주는, 그림책은 폭신하고 따뜻한 타임머신이다.

화가 천지수가 읽은 세 번째 그림책은 ‘안녕, 코끼리’(로랑스 부르기뇽 글 / 로랑 시몽 그림 / 안의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이다.


“우리 부모님이 가신 곳이야.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도 떠났고, 이제 곧 나도 가야 할 거야. 걱정하지 마. 코끼리들은 저곳에서 행복하거든.”

로랑스 부르기뇽이 쓰고 로랑 시몽이 그린 그림책 ‘안녕, 코끼리’에는 작은 쥐와 늙은 코끼리가 나온다. 그들은 서로가 둘도 없는 친구다. 작은 쥐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늙은 코끼리를 보살피고, 늙은 코끼리는 센 힘으로 어리고 작은 쥐를 지켜준다. 어느 날 늙은 코끼리는 작은 쥐를 데리고 절벽 끝으로 가서 절벽 반대편의 울창한 숲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따라 곧 가야 할 곳이라고 말한다.

코끼리와 쥐가 같이 바라보고 있는 저 아름다운 숲은 ‘천국’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천국’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이나 ‘이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존하며 나누었던 우정과 사랑의 마음은 죽음을 슬픔만으로 채우지는 않는다. 여기 작은 쥐와 늙은 코끼리의 이야기가 그렇다.

절벽 반대편의 숲으로 가려면 코끼리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지만 다리가 망가져 있다. 울음을 터트리는 코끼리에게 다가간 작은 쥐는 영원히 여기서 함께 살자고 말한다. 작은 쥐는 여러 해를 코끼리와 행복하게 지냈지만, 코끼리는 점점 더 쇠약해진다. 코끼리는 늙고 병들면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작은 쥐는 이별을 수용하고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제 작은 쥐는 친구의 편안한 안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튼튼한 다리를 만든다. 코끼리를 ‘천국’으로 잘 보내주기 위해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동고동락했던 반려동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말한다. 더없이 아름다운 표현이다. 모든 생명에게 죽음은 필연이고, 그로써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다리’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이어짐을 염원한다. 사랑과 추억이라는 수단으로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마음의 다리’다. 작은 쥐는 자신이 이어놓은 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건너가는 늙은 코끼리에게 크게 외친다.

“겁내지 마! 튼튼하게 만들었어!”

건너편 숲을 향해 걸어가는 늙은 코끼리는 작은 쥐를 뒤돌아보며, 마음을 의지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게 작은 쥐는 늙은 코끼리를 끝까지 안심시켜 준다. 나는 그들이 이별하는 그림을 보며 나도 모르게 훌쩍였다. 그 순간 문득 작은 쥐와 늙은 코끼리가 호숫가에서 평화롭게 물놀이를 하며 지내는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천국과도 같은 풍경. 그들의 우정은 이미 천국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살아서 함께 천국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생의 이후에 펼쳐질 천국도 의심없이 믿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별의 순간에도 ‘함께’라는 믿음이 견고했고, 죽음을 슬픔으로만 느끼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이름의 마음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 ‘안녕, 코끼리’는 너무나도 깊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천지수(화가·그림책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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